가끔 인터넷에서 좋지 않은 인연으로 맞이했던 이들을 검색하기도 한다.
어떻게 지내나 궁금한 마음이 크기에 그렇게 찾아 읽어보기도 한다.
검색으로 그들의 현재를 읽고 나서 느끼는 주된 감상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정말 자신이 가진 틀을 깨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좋은 인연과 큰 노력이 필요하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불교는 자신을 알아가는 것에서 시작되는 가르침이다.
그런 생각이 강해서인지 매우 미흡하겠지만 스스로 돌아보려 노력하는 편이다.
(아니 가끔은 돌아보게 이끌어지는 것도 같다.)
내 마음이 어떠한가, 내 생각이 어떠한가, 내가 어떠한가를 살핀다.
그런 내가 있다고 할 때, 머문 바라 할지, 경계가 할지, 근기라 할지, 그런 것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어떠하겠는가.
하는 말이 크게 다르지 않아, 늘 그 안에서 부지런히 돌아다닐 뿐일 것이다.
그러다가 수행이 진전되어 경계가 달라지면 보이는 바, 아는 바, 생각하는 바가 달라지니 말이 달라질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같은 말이라도 전과 달라 깊이있고 유연하며 따라서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가져다 쓰는 말일 것이다.
분명 내가 불교를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하던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그렇지만 그 이후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는 큰 변화없이 같은 자리에 서있다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좀 더 깊어지고 날카로워지고 그런 과정 중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에 따라서는 그저 머물기도 하고 오히려 뒷걸음치는 때가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정진하여 충분히 무르익으면 한번 크게 넘어갈 때가 오지 않을까 싶다.
변화의 그 순간을 인지하든 못하든 깨어나니 서 있는 자리가 달라졌음을 알아차리고 놀랄지도.
자신의 틀을 깨는 것,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길잡이를 만나 꾸준히 걸어가다보면 처음과 많이 달라진 자신을 알아차릴 날이 있을 것이다.
온전히 부처되기 전에는 자신을 명확히 아는 것이 불가한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말하겠다.
수행이 익어가면 당연히 알게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수행자의 뜻과 행이 애틋하면 불성이 알아차리라고 이런 저런 방식으로 보여주지 않겠는가 말이다.
모든 상황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결국은 한 고비, 한 경계 넘어가라고 만들어주고 이끌어준다 생각한다.
일, 이주 전에 시작했던 글을 이제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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