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경에 보면 일체지성취여래와 지장보살에 대해 나온다. 두 분이 이웃한 나라의 왕이었을 때 일체지성취여래는 '불도를 이루어 이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하리라' 하셨고, 지장보살은 '이 죄많은 중생을 제도하여 안락하게 하지 못하고 보리도에 이르도록 하지 못한다면 언제까지라도 성불하기를 원하지 않노라'고 하셨다. 고통받는 중생을 다 건지지 못하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님의 대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자비를 우리에게 전한다. 그런데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두 왕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성불과 중생제도를 별도의 것, 따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대승보살심을 따르는 이에게는 모양새가 어떠하든 두 가지가 함께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성불을 이루는 과정도 결과도 결국은 혼자만의 유익함을 담지 않기 때문이다. 깨달음과 중생제도를 나누어 생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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