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부처님의 자비는 차별이 없다.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8. 15. 14:04

방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경전을 보면 불보살님들이 중생의 근기에 맞춰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하게 법을 설한다는 것을 한번쯤은 읽어봤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다 말을 해도 저렇다 말을 해도 상황따라 가능한 이야기라 생각하지만 부처님을 전하는 불자라면 진실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고 그 방편의 다양함에 안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처님은 차별하지 않는다. 가리지 않는다. 대상을 가려서 비를 내리지 안고 골고루 대지를 적시는 비와 같다고 했다. 평등하다고 했다. 이렇다고 좋아하고 저렇다고 미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부분이 참으로 진실이라는 것을 마음에 깊이 새기는 것이 필요하다. 불은 온 법계에 가득하여 늘 같은 것을 전한다. 무엇이 다른고 하니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가 다를 뿐이다. 그것을 선근이라 하든 근기라 하든 무엇이라 하든 우리가 달라 달리 받아들이는 것이지 눈 밝은 이가 본다면 언제나 부처님은 온 대상을 향해 동일하게 법을 펼치고 손을 내밀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중생이 사랑하고 미워하는 부처님이라 착각하는 것이지, 그것이 부처님의 참모습은 아니다. 예전에 하늘이 자신만 이뻐한다, 이런 의미의 필명을 본 적이 있다. 만약 누구만 이뻐하는 부처님이 있다면 나는 부처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방편으로 보이는 모습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실이 될 수 없다. 또 부처님 아닌 다양한 존재들이 부처님의 모습으로 화하니 완전하지 않은 대상의 품성을 부처님 품성으로 오해하는 일이 될 수 있으며, 이 마음에 오래 머물면 때에 따라 독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은 차별이 없다. 다만 대자대비하다. 그래서 허물이 있는 이도 허물이 없는 이도 편안하게 부처님을 부를 수 있다. 중생의 시각에서 보면 이런 저런 것을 내세워 이래서 나를 더 이뻐하실거야 하고 싶은지 모른다. 그 생각이 스스로를, 또 그것을 들은 이들을 불교에 견고하게 하는 방법이 된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 자체로 꼭 맞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라. 내 마음이 평등함을 바탕으로 세상을 자비롭게 바라볼 수 있을 때 불법에 안주했다 하지 않겠는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면, 차별하여 마음이 고르지 않다면 불법에 안주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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