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지적, 최적의 지점은 어디일까?

향광장엄주주모니 2018. 11. 23. 00:25

장애인 시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침이었다. 거기서 주간에 근무를 서는 사회복무요원이 늦은 출근인지 얼굴을 숙이고 시설로 들어섰다. 전에도 한번 지각을 해서 관리자에게 한 소리를 들었는데 그 날도 지각이었다. 근무지로 들어서는 그의 얼굴과 온몸에서 미안함, 어쩔 줄 몰라하는 마음이 오롯이 전해졌다. 관리자도 그날은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소리없었지만 최고의 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에 봤을 때 그 친구는 아침 일찍 출근했고 관리자에게 장난스러운 칭찬을 받았다. 좋은 아침 풍경이었다.

만약 이미 충분히 미안해하는 그 친구에게 한차례 싫은 소리로 혼을 냈다면 그 소리가 맞다고 해도 마음에서 거부함이 일어나기 쉬웠을 것이다.


며칠전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사찰에 가서 일을 하고 나서 밥을 먹는데 비구니 스님들이 배식을 하다가 한 스님이 옆 스님에게 식판을 잘못 전달해서 밥이 담긴 채로 국통에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비구 스님들도 그 밥을 먹는지라 밥알이 섞여서 기분나쁠 수 있는 국에 대해서 배식하는 이들이 많이 곤란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 때 국통 앞에 서있던 스님이 식판 잘못 전달한 스님에게 '그렇게 제대로 안보고 건네면 어떻게 하냐'며 따끔하게 호통을 쳤다고 하는데, 일에 대해서 확실하게 혼을 내는(?) 그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좋은 것 같다고 지인은 말했다. 배식이 끝나고 혼을 낸 스님이 혼난 스님을 잘 챙겨주는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 들었다고 했다.

그럴수도 있지만, 나는 조금 달리 생각한다. 일에 대해 도통 마음을 내지 않는 이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하고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는 오히려 상대를 안심시키는 말과 행동이 스스로의 수행을 견고히 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바르게 잡아가는데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비정상적인 삐딱한 사람이 아니라면 설렁설렁 일을 하는 타입이라고 하더라도 식판을 엎은 그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맸을 것이고 스스로 충분히 자책했을 것이다. 가만 놔두더라도 머리가 모자른 사람이 아니고서야 일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질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 상황에서 혼을 내는 것과 안심시키는 말, 무엇이 더 이 사람의 마음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까? 

화를 내는 것은 쉽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일을 저지른 이의 마음을 헤아려 다독인다면 그것은 그 어떤 지적보다 긍정적인 힘을 발휘할 것 같다.

이런 생각에 미치니 혼을 낸 비구니 스님의 행동이 조금은 아쉬웠다. 그래도 스님이니 무언가 달랐으면 하는 그런 기대심리가 작용하는 것도 같다.


지적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 지적이 언제, 어떤 모습일 때 최적인지를 고민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양새의 지적이 생겨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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