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지적과 바르게 알려주는 것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5. 20. 00:47

지적과 바르게 알려주는 것은 다르다. 불자로서 아직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은 부분인데 명확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적으려 한다. 예를 들어 앞에 낭떠러지가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아는데 어떤 사람이 그 길로 계속 걸어나아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지혜와 자비로운 부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너는 그럴 인연을 지었으니 당연한 너의 몫일 뿐이다. 그러니 그 길로 가서 떨어지거라 하겠는가. 대번 그게 무슨 부처냐고 할 것이다. 맞다. 지혜로 밝게 알고 자비로 세상을 바라보는 부처님이라면 그 길이 위험하다는 것과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상대가 듣든 말든 말이다. 그 사람의 근기에 맞게 왜 당신이 그 길을 가고 있는지를 깨우쳐줄 수도 있다. 이게 바르게 알려주는 것이다.


그럼 지적은 어떤 모습일까. 지적은 낭떠러지로 나아가는 그의 무지를 비난하는 것이다. 당신이 그 길로 나아가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자비와는 다른 냉랭한 마음, 부정적인 마음으로 밝히는 것이다. 이게 지적이다. 이 두가지의 차이를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무심한 불자, 자비와 먼 불자의 모습을 벗어날 수 있다. 지적은 공덕을 허물지만 바르게 알려주는 것은 두루두루 복이 된다. 당신은 지적을 하고 있는가, 바르게 알려주고 있는가. 당신은 비난, 무시, 격멸을 품는가, 자비, 안타까움을 품는가. 오늘 다른 이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했다면 그것을 일으킨 근본 마음이 무엇이며 그 마음의 끝이 무엇인지 잘 생각보기 바란다.


이 글은 어떤 이가 올린 글의 제목을 보고 나서 적는 글이다. 지적에 대해 잘못 이해하게 되면 나만 잘하면 된다는 소승적인 마인드에 갇히게 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러니 무엇이 지적이고 무엇이 바르게 알려주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이해, 결정이 이루어져야 부처님이 이끄시는 바 보살의 행을 따라갈 수 있다. 자신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바르게 고쳐나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타인에 대해서도 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역량껏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지적 비슷한 마음이 올라올 때 어떻게 하면 될까. 누군가를 지적, 비난할 마음이 생긴다면 그 지적거리, 비난에 대해서 자신의 허물을 먼저 살피는 것으로 시작하면 된다. 상대의 허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허물에 걸리는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다 보면 자비로 바라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깨닫게 된다. 자신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으로 한번 걸러진다. 그리고 상대의 허물에 대해 그가 정말 바르게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빌어주거나 필요하다면 부드럽게 표현하여 알려주면 된다. 이것으로 불자의 도리를 다하게 된다.


글을 이리 쓴다고 내가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리 쓰면서 다시 한번 결심하게 되니 더 행으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