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를 사기 위해 차를 타고 가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일없이 치열하게 경전을 읽고 염불을 하고 소소하게 사람들과의 인연을 이어가면서 수행하던 시절 단편적인 나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다르다는 생각.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 이른 아침 운전을 하다가 부모님을 하차시키기 위해 도로변에 잠시 차량을 정차시켰는데 그것이 자신의 주행을 방해했다고 뒤따라와서는 차문을 열고 험한 말을 하던 운전자가 있었다. 황당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금새 마음을 되돌렸다. 다른 이들을 이롭게 하겠다는 뜻을 세운 나인데, 상대를 향해 화를 낸다면 내 화의 독이 그를 해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를 옹호하는 힘으로 인해 그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오늘날 나는 이러하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과보가 있으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이 마음에는 보살의 자비가 스며있지 않다. 세파에 휩쓸려 갈수록, 그래서 괴로움이 생생해질수록 단지인과를 바라보면서 하루빨리 악이 사라지고 선으로 주변이 채워지기를 바란다. 그럴듯하지만 이 과정에는 상대를 향해 자비심을 자리하지 않는다. 수행으로 이룬 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니 '그럴 수 있다'든지 '그의 마음'이라든지 이런 비슷한 생각으로 화를 떠날 수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세상 속에 있어도 향기로울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보살도일 것이다. 오늘의 나는 과거의 나에 비해 퇴보한 모습이다. 하지만 치열하게 나를 흔들어가는 환경 속에서도 좋은 것을 잃지 않고 다시 돌이키며 견고해질 수 있다면 아마도 연꽃을 피우는 보살이지 않을까. 상승을 위한 과정일 수 있는데 자꾸만 게을러지니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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