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사찰 마당에 이르렀을 때, 내 앞에 차가 한대 서고 안에서 여자가 한명 내렸다. 남편이 부인을 태워다주고는 급히 떠나가는 듯 했다. 가만 보니 나와 갈등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저 차안에 앉아 바라보는데, 예쁘장한 얼굴에 깊게 배어버린 평상시의 찌푸린 어둠이 뒷모습으로도 느껴지니 신기했다. 분위기, 아님 에너지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혼자 있을 때와 나에게만 보이는 얼굴이 여실히 느껴졌다.
올해 유난히 사람들과 부딪힘이 많았다. 인터넷 카페에서 그러했고 사찰의 합창단에서 그러했다. 결국은 내가 성숙하지 못해서 그런 것임이 분명하지만, 내 주변에 청정함을 흐리는 것들이 포착될 때 그것을 참아내기 못했다.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맞다면 억지로라도 그러해야 하겠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것이 맞는지, 또 맞다면 내가 능히 그럴 수 있을지.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서 가끔씩 너무 선명하게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남들은 알아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맞다고 조언을 해오지만 정말 모르는 듯 넘어가는 것이 최선인지를 잘모르겠다. 물론 그냥 두면 인연따라 흐름따라 자연스럽게 이리 갈 사람은 이리, 저리 갈 사람은 저리 가게 될 것이다. 모든 상황을 그저 보아 넘기는 것이 수행이 된, 근기 높은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자리인지도 모르겠다만, 아직은 어떻게 하는 것이 자비롭고 지혜로운 것인지 분명히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한때 그녀는 정말 이상했고 두렵고 싫은 존재였다. 늘 주변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무언가를 베풀고 칭찬하고 한없이 자신을 낮췄지만, 욕심과 자만, 거짓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인정받고 싶어하고 사랑받고 싶어하고 주도하고 싶어하는 짙은 욕망이 여실히 느껴져서 불편했고 위험스러웠다. 그런 그녀를 마주하기 힘들어 합창연습을 한달 쉬고 나서야 너무 괴롭지 않은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갈등이 있은 이후 나에게 인사하는 법이 없기에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일부러 인사를 건넸다. 직접 건네는 인사니 그녀가 받았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사람의 얼굴빛이 그렇게 검을 수 있다는 것, 이쁜 것과 상관없이 흉할 수 있다는 것을. 편안할 리가 없고 즐거울 리가 없었을 것이다.
법회를 참석하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는 그 사람의 옷차림, 그간 해왔던 언행들이 오버랩되면서 '이런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다시 한번 명확해졌다. 단지 사랑받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어리석은 사람. 딸마저 경쟁상대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태어나서 몸이 약한 그녀를 부모님은 방 한켠에 내버려두었다고 했다. 살면 키우면 아니면 말고 했단다. 그런 것이 원인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사람들 관계 속에서 인정받는 것에 목숨을 거는 것 같았다. 늘 시댁과 남편, 딸의 허물을 즐겨 말하는 그녀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녀가 피해자이자 가해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됐다. 결벽증이 심한 남편, 제왕적 성향의 남편에 대한 일화를 끊임없이 털어놓았지만, 그런 남편마저 손에 쥐고 조종하는 그런 정도의 사람으로 느껴졌다. 늘 가리고 포장했겠지만, 자신을 반대하는 나를 대하게 되니 참지 못하고 숨겨둔 속마음과 성향을 드러냈다. 순간 너무 놀라서 그 자리를 벗어나 염불을 했다. 심장이 온통 쿵쾅거렸다. '저런 사람이구나. 무서운 사람이구나. 피해자가 아니구나. 약한게 아니구나. 선한게 아니구나'
그런 엄마 만나서 딸도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대치되는 사람에 대한 가멸찬 태도. 남편의 마음, 두 아들의 마음도 얻었다면 딸은 그런 엄마 밑에서 정말 힘들지 않았을까?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 것이다. 마음을 얻고 인정받기 위해 한없이 관대하고 상냥한 모습으로 지내다가 결국 사람들에게 상처받는다. 사람들에게 상처준다. 그런 마음이라면 끝이 좋을리가 없다. 늘 분주하고 조바심 속에서 살아간다. 자기애가 강하기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최고라는 교만함이 있지만, 버림받은 자의 불안과 자신없음이 교묘하게 공존한다.
그의 얼굴이 진짜 밝아질 날이 있을까? 미간에 보톡스를 맞은듯이 내천자의 주름이 지어지지 않을 것 같은 여여하고 찬란한 기쁨이 가득한 날이 있을까? 그런 날은 아마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음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사유하게 되는 그 때에 비로소 열릴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나에게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 나는 어떤가. 시작도 끝도 문제의 해결도 결국은 내 안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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