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현생에 원한을 풀고 싶다면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1. 27. 11:49

이유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내 삶이 괴롭다면 과거나 현생에 좋지 않은 일들을 많이 했거나 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하고 밝은 미래를 원한다면 지금 바르게 선업을 쌓아가며 살아야 한다. 다시 말해 과거가 현재의 나를 만들었고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들어간다. 이런 법의 이치를 알아차리기만 해도 분명 살아가는 큰 힘이 된다.


오늘은 악연에 대한 이야기다. 가족이나 여러 인연자로 만나 현생의 나를 한없이 괴롭히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삶이 고통스럽고 원망스러울 때 위와 같은 인과의 법칙을 가져다가 내 삶에 적용하면 그래도 견디기가 수용하기가 편해진다. 무슨 이유때문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내가 그럴만하니, 그가 그럴만하니 우리가 지금 만나 이렇게 살아가는구나하면 원망의 마음이 조금은 수그러든다. 더구나 전생에 어떤 사연이 있어 현재가 펼쳐졌는지를 안다면 더할나위 없지 않을까?


그런데 안다고 해도 마음을 어떻게 쓸지는 전적으로 나의 문제이다. 이치를 알고 있지만 다시 탐진치에 이끌려 고통받는 그 상황에 절망하고 상대를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또 다른 악의 씨앗을 뿌릴지, 알아차린 힘으로 마음을 바르게 써서 그 악연의 고리를 이번 생에 끊을지는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달려있다.


죽을듯이 힘든가? 그렇다면 죽을듯한 고통에 맞먹을만한 깊이로 반성해야 한다. 왜냐하면 내 고통이 극심할수록 내가 상대에게 준 고통이 극심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질책하고 원망해야 한다.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많이 어려워진다. 나를 괴롭히는 상대에게서 나로 인해 고통받은 얼굴을 보아야 한다. 괴로운 나에게서 상대를 죽을듯이 괴롭힌 악한 얼굴을 보아야 한다. 원망할 것이 있을까?


상황을 수용하고 진심으로 반성해야 한다. 내가 고통이 싫은데 남이라고 고통이 좋았겠는가. 그 고통을 준 과거의 날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상대를 있는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논리로 상대가 이것을 잘했네, 잘못했네 한다면 원한을 풀 날은 멀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인연으로 스스로 자각하든 못하든(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그에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수용했다면 그의 밝은 날을 바라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잠시 나는 잊어버려도 좋다. 나의 절망, 답답함은 옆으로 내려놓아도 좋다. 왜냐하면 기도를 하는 순간 나 자신은 이미 그 기도의 영향력 안에 들어가고 머물기 때문이다. 선한 마음과 기도가 결합되면 무량한 힘이 생겨나고 기도자는 그 힘 안에 머물게 된다. 상대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 반성하고 참회하면서 늘 불보살님이 그의 삶을 밝게 해주시기를 기원하라. 그 마음으로 살아가라. 그러면 어느 순간 문제가 사라진다. 시간이 걸린다고 지치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 


현생에 원한을 풀고 싶은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인식, 상대에 대한 미안함과 참회의 마음, 그의 삶이 밝아지기를 바라는 좋은 마음으로 생활해나가라. 아무리 악심을 품은 상대라도 진심이 쌓이다보면 그의 마음에 닿을 날이 반드시 온다. 그 날이 바로 악연의 고리가 끊어지는 순간이며 원한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참회, 반성은 부정, 소극이 아니라 밝은 미래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다. 침울해하고 패배자같은 마음에 젖어드는 것은 참되고 복된 참회의 모습이 아니다. 잘못을 수용하고 그 잘못을 돌이키기 위한 노력,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이 참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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