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승현스님 법문)나는 어디쯤 와 있는가?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12. 29. 09:03

아침에 승현스님 법문을 읽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글자 및 줄바꿈은 임의조정합니다.


“가정에 하나의 참 부처가 있고, 일상 속에 하나의 참 도가 있나니, 사람이 능히 성실한 마음과 화한 기운을 지니고서 밝은 얼굴과 부드러운 말로써 부모형제가 한 몸같이 뜻을 통하게 하면, 바르게 참선을 하는 것보다 만 배나 낫다.“(채근담)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의 얼굴이 어두워지고, 인심이 점점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가족들 간에도 단절된 대화로 인해서 청소년과 노인, 부부 등 가정문제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합니다. 가족 간의 대화 단절이 가정의 행복을 무너뜨리는 원흉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일수록 오히려 나 자신부터 빨리 깨어나서 좀 더 적극적인 관심과 따뜻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옛말에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한 말처럼,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듣는 이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고,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시인 양서우가 말하길, “생각만으로는 모래알 한 알도 움직일 수 없지만, 부드럽고 진실한 말 한마디는 다른 이의 영혼까지도 크게 움직인다.” 라고 했습니다.


남위에 우뚝 서서 성공한 사람은 아무런 불편 없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남보다 더 큰 시련과 장애 속에서 빛을 발한 사람입니다. 지구가 태양을 향해서 돌고 있듯이, 우리들 또한 완전한 나로 깨어나기 위해서 윤회를 통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지혜는 경험을 통해서만 얻어지기 때문에 나 자신이 이생의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지금 만난 가족과 형제 그리고 현재 만나는 모든 인연들이 다른 누가 아닌 내가 원한 것이기에 그것을 이제 와서 더는 싫다하면서 외면하거나 회피하면 금생의 성불은 그만큼 더 미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듯이, 삶에 장애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당장 죽음을 맞게 될지라도 자비심을 가지십시오.


부처님이 보리수 밑에서 7일 만에 깨달았지만 그러나 6년간의 고행이 없었다면 7일 만의 깨달음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불편이나 괴로움이 없기를 소원하지만 그런 삶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간혹 큰 시련도 장애도 없이 사는 평범한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이는, 이생에서 성불보다는 쉬어가는 삶의 선택한 것입니다. 즉 영적으로는 미숙아 삶으로서 반겨할만한 삶이 아닙니다. 세파에 시달림이 큰 삶을 선택한 이들은 이미 영혼의 정화가 많이 된 사람입니다. 이들은 한 단계 한 단계 거쳐 가는 삶이 아닌 단 번에 삼생 내지 십생 이상을 뛰어넘기 위해서 나온 분들 이다보니 평범한 삶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이글을 접하는 여러분은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느 정도 수준의 단계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어려운 말보다 좀 더 쉬운 말을 하겠습니다. 家和萬事成이라.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말로서, 잘살기를 바라고 잘 풀리기를 원한다면 가장 먼저 내 집에서부터 사랑과 감사가 넘쳐날 수 있도록 만드십시오. 가족이나 남에게 덕 볼 생각부터 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결코 환영받지 못합니다. 반대로 남을 이롭게 하려는 사람은 어느 곳 어디서 살아도 항상 사랑받고 즐겁게 살아갑니다. 상대가 먼저 잘해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나누고 베푸십시오. 부처님께서도 이르시길, “잘 살기를 소망한다면 제일 먼저 베풀어라” 하신 뜻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돕고 싶지, 자기를 불편하게 하는 이를 도와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색한 마음을 빨리 걷어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은 복은 그가 천자나 임금일지라도 절대 빼앗을 수 없습니다.


옛이야기 한 토막을 전합니다.

당나라 태종황제인 이세민은 수나라를 물리치고 당나라를 건국했으며 주변 민족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서 중국을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로 황제에 오른 뒤,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펴서 태평성대를 이루게 했습니다. 하루하루 너무 편하게 지내던 어느 날, 사주가 같으면 팔자도 같은지가 궁금해서 신하들에게 천자인 자신과 똑같은 사주를 지닌 사람을 찾아오도록 명령합니다. 그 결과 두 사람이 왔는데, 태종이 그들에게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말하길, “신은 잠만 자면 천하 재물이 제 것이고, 만조백관과 삼천 궁녀를 거느리고 지냅니다. 하지만 잠을 깨고 나면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어려워서 근근히 지내옵니다.“ 이 사람은 꿈속에서 천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하길, “신은 아들이 여덟 명인데 모두가 만석꾼입니다. 정월 초하루부터 칠일마다 한 번씩, 아들 여덟 명이 번갈아 가면서 찾아와서 비단옷과 진수성찬으로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황제가 생각하길, ‘이 사람은 천자인 나보다 더 복이 많은 듯하구나. 이 사람에게 걱정을 좀 만들어줘야겠다.' 생각한 다음 야광주 구슬을 하나씩 나누어 주면서 말합니다. “우리가 한 날 한시에 태어났으니, 매년 봄마다 이렇게 한 번씩 만나 놀아 보세나. 그리고 그날은 지금 주는 이 야광주를 꼭 가지고 와야 하네.”

아들을 여덟은 둔 부자가 집이 황하강 건너에 있었는데, 천자가 신하에게 말하길, "부자가 돌아가는 배에 함께 타고 가면서 야광주를 물속에 빠뜨려라"하고 명을 내렸습니다. 변복을 한 신하가 부자가 황제가 준 야광주를 자랑하자 그것을 보여주기를 간청하였고, 부자가 야광주를 넘겨주자 배가 기우뚱거릴 때 그 야광주를 일부러 물속에 빠뜨렸습니다. 부자가 크게 놀라면서 말했습니다. “아! 천자가 주신 야광주인데, 큰일 났다. 나는 이제 죽겠구나.” 부자가 태산 같이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사흘째 되는 날, 황하강 강변에서 사는 소작인이 잡은 잉어를 들고 부자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그가 가져온 잉어의 배를 갈라보니 야광주가 들어있었습니다. 워낙 복을 많이 지어 놓았으므로 구슬을 삼킨 잉어가 잡혀 그의 집으로 온 것이었습니다.

이듬해가 되자 다시 세 사람이 모였는데, 천자가 구슬을 잃어버린 부자가 근심걱정으로 피골이 상접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상외로 좋은 얼굴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태종이 묻기를 내가 준 야광주는 가지고 왔는가? 하고 묻자, 폐하 여기 야광주가 있습니다. 하고 보여주자 이상하게 여긴 천자가 자초지종을 캐물었고, 부자가 구슬을 도로 찾게 된 내력을 듣고는 무릎을 탁치면서 찬탄했습니다. “아! 복을 지은 자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구나. 그대가 천자 보다 복을 더 받는 것 같아서 걱정을 좀 주려고 일부러 구슬을 잃어버리게 만들었는데, 그 구슬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그대에게 다시 돌아오는 바람에 그대의 근심걱정을 면케 해주었구나.” 하고는 두 사람에게 號(호)를 하나씩 내려 주었습니다. “밤마다 꿈속에서 천자 노릇을 하는 그대는 夢天子(몽천자), 지은 복이 많아서 근심이 없는 그대는 無愁王(무수왕)이라는 호를 내리노라.”


이처럼 복이 많은 사람은 임금도 하늘도 그를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쌓는 복은 게을리하면서 해만 바뀌면 올해는 좋아질까요? 내년에는 좀 나아지나요? 하는 한심한 소리만 합니다. 이제 새해부터는 어리석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내 업으로 내 운명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 나는 아무런 복도 짓지 않으면서 시절을 따지고 운을 따지는 바보는 되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보다 더 큰 부자가 되어서 행복해지기를 소망하지만 도무지 아무리 소원을 하고 노력을 해도 좀처럼 부자가 될 수 없으니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소망만 바라고 있지 복은 쌓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 한마디, 작은 선행 하나 하나가 모여서 현재의 내 삶이 된 것이니, 지금부터라도 해가 될 말, 해가 될 행동을 하지 말고, 힘이 되고 복이 되는 선행을 찾아서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쌓아서 언제 복을 받느냐고 조바심을 내지 마십시오. 겨울에 눈 쌓이듯이 시작은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어도 그것이 모이고 쌓이면 제아무리 큰 나무와 거대한 집도 무너뜨리는 법이니까요.


노만 빈세트 박사의 말을 전합니다.

“인간은 자기가 오랫동안 상상해온 그대로의 인간이 되기 쉽다. 자기에게 얼마만큼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한 능력의 인간이 된다.“

내 운명은 남이 아닌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남보다 나의 성공이 다소 늦더라고 인생의 긴 레이스 에서는 결코 늦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오늘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소원성취를 축원합니다.

승현스님 ^^


좋지 않나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현상을 통찰하고 밝은 자리로 이끌어가는 이가 선지식입니다. 선지식을 만나 바르게 배워나갈 수 있음도 기쁨이며 복이니 오늘의 선연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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