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게으른 나, 집적거리는 너는 누구인가.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12. 9. 19:29

근무를 바꿔 3일을 내리 일했고 오늘 하루 휴무를 맞이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피곤을 핑계삼아 잠을 자고 3일만에 만나 기분좋은 부모님과 밥을 먹고 이제 다시 컴퓨터 앞에 있다. 낮잠 자면서의 꿈이야기를 적으면서 지금의 나를 글로 남겨 스스로에게 또 인연있는 다른 이에게 오래 게으르면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10월부터 시작된 실습으로 인해 딱히 쉬는 날 없이 2달을 나름 강행군을 한 후라 피곤하다고 해도 그런가보다 할 일이지만, 아무튼 피곤을 내세우며 게으르다가 쉴 시간이 나면 인터넷을 하고 드라마를 보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자고 그렇게 지내온 2달이었다. 틈틈히 게으른 나를 성토하느 글을 쓰고 있으니 뭐 색다른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적을만한 시기가 도래한 것 같다. 지난 글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마도 마지노선에 이른 것이 아닐까 싶다.


꿈을 꾸고 나서 기분이 어떤고 하니 마치 일을 해서 열심히 저축을 해오던 이가 아직은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때가 아닌데 정신없이 놀다가 은행에 잔고가 떨어질 것임을 아는 것도 같고, 마치 오랜 시간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 이렇게 소원하다가는 더 이상 그 언어를 사용하지 못할 처지에 놓이게 되는 위급한 시기임을 아는 것도 같다. 그런 마음이 꿈에 투영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꿈은 별 내용이 없다. 나라는 사람이 있었고 편하게 쉬고 있는 나에게 사람들이 집적거렸다. 누군가는 머리를 어루만져주었고(기분좋다 느꼈지만 점차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한쪽은 흉한 얼굴, 한쪽은 매끈한 얼굴을 한 모습으로 나에게 몸을 기대며 얼굴을 이리 저리 돌렸다.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 식의 접촉이 꿈 속에서 이루어졌다. 꿈을 깨면서 드는 생각이, '아, 뭔가 위험하구나. 꿈에서 이런 저런 이들이 건드릴만큼, 그것에 내 마음이 움직일만큼이 되었구나. 이제 다시 수행의 날로 돌아가야 되는구나.'했다. 아직 충분하지 않았으나, 게을러도 유지되던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수준에서 더 이상 게으르면 어떻게 될지가 가늠되었다. 나 하나도 밝히지 못하는데 누구의 삶을 밝히겠는가. 꿈은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기도 하니 스스로 어떠한가를 돌아보는 좋은 장이 되어준다.


오래도록 게으른 나를 알아도 행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런데 꿈에서 이르길 '게으른 내가 지속되면 흐려질 것이며 그저 이리 저리 휘둘려나가는 삶이 기다릴 뿐'이라고 일러준다. 엄중한 경고 아니겠는가. 너무 늦기 전에, 아직은 불력의 자락에 연결되어 있을 때 돌아가려 한다. 참다운 행복과 안락이 자리한 부처님의 가르침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모든 것이 너무 오묘하다. 살아서 숨쉬며 생생하게 드러난다. 감사하다. 다행이다. 기다리라. 인연자여, 나의 수행을. 안심해도 좋다.


적고 보니 '그 꿈에 무슨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만 늘 수행삼아 꿈을 활용하는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꾸는 자와 꾸게 하는 자의 대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어찌보면 내가 나에게 꾸게 하는 것이니 '아는 나'가 '모르는 나'에게 전하는 편지와도 같다. 아무튼 수행하는 이라면 너무 오래 게으르지 말라.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