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가끔씩 블로그에 들어옵니다. 잘 안 들어오죠. 오랜만에 들어오니 공왕불 관련 글에 댓글을 적어주신 분이 계십니다. 다시 정리하여 제 의견을 올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어보려 합니다. 무어라 적어야 명확해질까요?
글을 보니 공왕불 기도하시는 분인 것 같고 이렇게 댓글을 다셨어요.
글쓴이께서는 전생에 지은복이 있으시니 이번 생은 그럭저럭 굳이 법화경 수행을 하지 않더라도 밥 먹고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겠지만.. 저를 포함한 수백수천 명의 사람들은 공왕불 수행이 아니면 아무런 법력도 일어나지 않으며 사람 구실 하기조차 버겁습니다.. 각자 개인의 생명 상태가 다르니 이해는 갑니다만 "바른 것을 접하고 알아야 바르게 사유하고 바른 행을 실천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라는 대목은 너무 본인 입장에서 생각한 속 편한 얘기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매 순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인데 어떻게 좋은 글을 읽고 바르게 사유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또, 기도 효과를 느낀 그 수백 명의 사람들이 왜 목이 터져라 '오직' 법화경만이라고 하는지 이유를 아시나요? 모르신다면 글쓴이께서 그들 입장에서 단 하루만 살아본다면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1. 공왕불기도만이 법화경 수행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요.
생각도 업이라지만 자유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밖으로 뱉어 다른 이들을 재단하고 끌어들이는 순간 더 강력한 업으로 작용할 거예요. 나는 법화경에서 말씀하신 바 오종의 수행법에 속해 있는 수행자입니다.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까지야 어쩔 수 없지만, 경전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주장으로 읽는 이들을 호도하는 것은 하지 마시라 말리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법화경 수행자입니다. 그리고 나무묘법연화경 연창을 하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불교 수행으로 지금의 내가 있으며 각 수행법은 다르지만 그 근본은 다르지 않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인연법일 뿐이니 자신의 '오직'을 주장하느라 다른 이들의 수행을 부정하거나 가벼이 여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서로 존중하면 될 일입니다.
특히 법화경으로 흐리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저로서는 공왕불기도가 곧 법화경 수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전에도 없는 내용을 가지고 주장하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당장 경전을 읽을 여유가 안된다면 자신이 읽을만할 때 한번 스스로 읽고 알아보기 바랍니다. 그런 주장으로 다른 법화경 수행을 부정하는 것이 괜찮은 것인지.
2. 내 입장에서 적은 속 편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생각의 이유
이건 좀 결이 다른 댓글이었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천편일률적으로 자신들의 교리?를 주장하면서 내가 틀렸다고 일방적인 비판을 하던 것과는 좀 다르네요. 쉽게 말해서 복덕이 없고 고통뿐인 자신들의 숨통을 트여주는 것은 오직 공왕불 기도이니, 자신들의 이런 처지를 이해못하고 바르게 뭔가 알아보라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겁니다.
네, 그럴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죽겠는데 무슨 글이 머리에 들어오겠습니까! 그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부처님을 따르는 길에 안전하기 위해서는 경전의 가르침을 가까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을 통해서 여러가지 긍정적인 변화에 놓이게 되고 부처님에게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길을 알고 걸어가는 것과 막연히 걸어가는 것, 무엇이 더 효율적일까요? 특히 길을 걷는 자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많아서 올바른 판단력이 흔들릴 수 있다면 말입니다. 아마도 걸어가는 행위는 길을 아는 행위와 조화로울 때 가장 효율적일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듣는 것은 마치 길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또 올바른 가르침은 인과를 이야기합니다. 자작자수입니다. 지은 바가 있어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좋습니다. 복받은 인생도, 저주받은 인생도 자신이 지은 결과에 불과합니다. 지금을 바꾸고 싶다면 과거를 반성하고 나를 돌아보고 씨를 심듯이 올바른 행을 지어나가야 합니다. 여기에 외부로의 평가는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자비로운 불법으로 인해 더 작게 받고 더 빠르게 받는 것이지만, 업에 대한 과보는 명확합니다. 당연히 바르게 알아야 하고 사유해야 하고 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다시는 그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빚을 갚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변화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 다시 빚쟁이가 될 것은 불보듯 뻔합니다.
바른 가르침을 알고 사유하고 행하는 것은 자신의 문제와 해결책이 무엇인지 알고 해결해 나갈 힘의 원동력이 되어 줍니다. 고통스러워서 지금 당장 못하겠다는 그 행위에 문제를 영원히 벗어날 해답이 있습니다. 다만 할지 말지는 각자 판단하면 되지 않을까요? 물론 저로서는 나무묘법연화경 해서 숨이 트였다면 바르게 알고 사유하고 행하는 과정에 들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3. 결론
당신이 좋은 것을 하면 됩니다. 당신의 인생이니까요. 그 결과도 온전히 당신 몫입니다. 나도 나무묘법연화경을 좋아합니다. 물론 아미타불,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등 모든 부처님의 법과 부처님, 보살을 다 좋아합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문제일 뿐 법은 늘 문제가 없는 것이니까요. 제 구역에서는 오직 이것이라는 말로 분별심을 조장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작자수, 우리의 선택으로 우리의 날들이 만들어집니다. 참 두렵지만 내 인생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드는 것이고 그래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런 삶의 태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형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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