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중에 사람들을 심하게 괴롭히는 이가 있었다. 머리는 나빴고(비난이 아니라 진짜 그랬다) 심성은 곱지 않아서 자기 감정 실리는 대로 행동했다. 동료라지만, 조직의 특성상 속성이 갑이라서 을같은 동료들을 힘들게 했고 시설의 물질을 주어진 것 이상으로 탐했으며 이용인들 위에 군림하면서 괴로움을 주었기에 불자로서 보기에 그의 앞날이 참 좋지 않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옆에서 보면 이리 저리 아픈 곳도 많았고 그랬다. 당연하다 생각했고 더 심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나나 다른 이들을 괴롭힐 때마다 그가 받을 과보가 어떠하겠는가를 생각했는데,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혼을 했고 딸이 하나인데 들어보면 부모 형제가 다복했고 사는 형편도 나쁘지 않았다. 부딪혀서 아는 모습을 보면 아직 극한 괴로움 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받을 것으로 나쁜 것만 남았을 것이란 생각을 했는데 미묘하게 이격된 듯 했다. 그게 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게 고약하게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인데 오랜 시간 남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기복의 수준이었지만 불자라고 했고 절다니며 남들 하는 것을 열심히 한다 했는데 불자라는 그 사실보다 내 마음에 강하게 닿은 것은 다른 이를 돕는 그녀의 마음과 행이었다.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아, 그래도 쌓은 복이 있어서 그런 것이구나. 그것은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어가는 업에 따라 많은 것들이 바뀐다. 선업이 악업을 대신하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만 지금은 이렇게 이해한다. 어느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겠으나, 선업의 과보가 있고 악업의 과보가 있다. 그러니 선업의 과보로 좋은 것을 받아도 악업에 대한 것이 다스려지지 않으면 그 과보 역시 받는다는 것이다. 나의 동료는 과거든 현재든 선업의 과보로 인간으로서 좋은 몫을 받는 것 같다. 하지만 악업을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런 좋은 몫에 더하여 큰 괴로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한 달 전 이야기라 지금의 그녀는 좀 달라진 것도 같다. 아무튼 쌓은 복은 그 누구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 그 과보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일이라 적어보았다. 내가 당연하게 예측했던 그녀의 괴로움은 과연 올까. 올 때 어떤 모습일까. 그 모습이 어떨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마음과 행에 달려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녀 곁에서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나로 인해 그녀가 좋은 영향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