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의 고민 : 기도하면서 이리 저리 많이 다친다. 크게 받을 것, 작게 받는다 생각하려 한다. 누군가 기도가 안맞거나 절이 안맞는 것 아닌가 라고 말한다. 내 생각에는 이렇다. 기도한다고 일어날 일 안일어나고 안일어날 일 일어날까 싶다. 좀 더 장애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끝까지 잘해나가려 한다.
나의 의견 : 크게 받을 것을 작게 받는다는 이 불자의 말에 대해서는 전에도 글로 적은 적이 있다. 이 구절은 금강경에 나오는 것으로 기억한다. 금강경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수행하는 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지 않은 일을 겪는다면 원래 크게 받을 일인데 그 공덕으로 작게 받고 넘어간다고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구절을 찾아서 옮기지 않겠지만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어찌되었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 진실이며 수행을 해나가는 불자들에게 큰 힘이 되는 구절이다. 법화경을 읽는 이 불자 역시 기도를 해나가면서 겪어지는 일들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는가.
그것으로 이미 어느 정도 답이 구해졌다고 생각한다. 이미 답을 알고 있으니 고민이라고 글을 적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사람이 올리는 글에서 느껴지는 어떤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처음보다 많이 변화했고 많이 안정되었지만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글을 읽을 때마다 뭔가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부분도 결국은 좋아지리라 생각하지만 말이다. 기도의 장애가 있다면 그저 크게 받을 것을 작게 받는다는 것으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에 머물지 말고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해 돌이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내 마음이, 내 행이 지금 배우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바른가를 살피는 것이 근기를 갖추어가는 불자가 행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기도의 장애는 업장이 소멸되는 과정일 수 있고 기도자에 대한 시험일 수 있고 기도자가 합당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거부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말처럼 기도가 안맞거나 절이 안맞는다는 것은 그 기도에 그 절에 그 사람이 합당하지 않기에 일어나는 현상일 수 있다. 그 과정을 잘 넘어가는 것이 필요한데 가장 핵심은 기도자의 청정한 불심, 정성에 있다. 그 청정불심과 정성에 법계는 호응한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로 정해 말할 수 없지만 기도한다고 일어날 일이 안일어나기도 하고 안일어날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심하게 다칠 사람이 조금 다치고 넘어간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기도로 인해 일의 양상이 변화된 것을 인정하는 것인데 기도로 인해 일어나고 안일어나고와 무엇이 크게 다르겠는가.
왜 장애가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 업장의 소멸이라고 생각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바른 마음으로 돌이켜 참회하고 진실한 자비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하는 것이 합당하다. 법계의 시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럼에도 좋은 뜻을 세워 흔들림없이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필요하다. 법계의 거부라고 생각한다면 받아들여질 불자가 되기 위해 정성을 다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탐진치를 멀리하고 선업을 쌓는 것에 힘쓰는 것이 좋다. 그런데 늘 이렇게 분별하면서 사는 것은 어렵다. 그러니 내 입맛에 맞게 상황을 판단하여 혼자만의 기도를 하지 말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지혜와 자비에 합하는 뜻을 세우고 정성과 겸손과 진실함으로 정진하는 것으로 답을 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개인의 의견이며 이 글을 적으면서 나도 잊고 있었던 마음을 돌이키게 되니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다짐하는 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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