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인가 세면대에 섰는데 기침을 하면서 뱉으니 피가 조금 나왔고 목에서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었다. 아마 물혹인가 싶었다. 조금 더 크게 기침하면 나올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목에 가래 걸린 듯 걸려있는 그 물혹같은 이물감으로 숨쉬기가 조금 편안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 꿈을 깼나 보다. 참 바보같은 일인데 그 날 생각하길 이것이 현실이었나 꿈이었나를 고민했었다.
같은 날 불교대학 동기가 상을 당해 문상을 간 자리에서 지인들과 밥을 먹으면서 맥주를 마셨다. 말을 많이 했는데 술을 마시고 어울리는 것이 역시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있어도 흐려지기 마련이다. 또 불교대학 동기들인데 스터디 그룹을 결성한 이들이 별도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화합을 깨뜨린다는 생각들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룹을 주도하는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밝지 않은 나였다. 화합을 깨뜨리는 것은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갓집 가기 전에 병문안을 갔는데 병원에서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나누던 대화가 사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사찰에 대해, 특히 스님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는 지점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문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음주를 했기에 법화경을 읽을 생각없이 인터넷을 보다가 카페 게시판에 나에 대해서 적은 어떤이의 글을 보았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없이 단지 나를 한심한 사람으로 몰아 가고 싶은 그의 뜻을 알 것 같았다. 또 그 댓글에 호응하는 이들 중 익숙한 필명도 낯선 필명도 보였는데, 그들 마음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어떤 의도를 지니는지 짐작되는 바가 있었기에 웃음이 나면서 조금 씁쓸했다. 그렇게 모이는구나 싶었다. 그게 그들의 뜻과 인연일테니 아무도 막지 못할 것이다. 다 자기 몫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불자로서의 최선인지 아직은 잘모르겠다. 배워나가고 있지만 아직은 너무 부족하다.
또 모르는 사람인듯이 갑자기 나타나 나에게 생각이 많으니 생각을 줄여라. 글을 쓰지 않는게 좋겠다고 했던 사람이 알고 보니 이미 잘 아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이상하게 고운 표현과 달리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마음은 숨길 수가 없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은 날이었다. 그는 네이버 모카페에서 작년 12월 31일부터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글 여는 이들이 얼마나 불편할까를 고민할 정도로 지저분하게 글을 적었고 블로그에까지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 댓글을 차단했지만 정말 많이 고민했다. 그리고 자진하여 카페를 탈퇴했었다. 그것으로 종결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다음에서 그렇게 읽으면 불편한 내 글을 찾아 읽고 댓글을 다는 이유가 무엇일까.
동일인임을 알게 되어 네이버의 필명을 말하니 당황한 듯 보였다. 수행이 깊어져서 그 안목으로 그저 인연있는 나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라면 감사함만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댓글을 단다면 다 대응해주겠다는 심정으로 글을 주고 받다 보니 여전히 그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원망과 집착이라는 생각들었다. 크게 변한 것이 없어보였다. 말끝마다 하는 그 염불이 정말 어색했다. 던지는 글의 마음과 염불이 일치되지 않아 마치 상대방을 힘껏 때리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지 그랬다. 모든 염불은 좋은 것인데 가끔 그런 기분이 들 때 있다. 무슨 마음으로 저 말을 하는 것일까.
이렇게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날은 씻지도 않았다. 엄청 몸도 마음도 더러운 날이었다. '이제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술마시고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씻고 경을 읽든지 뭔가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할 일을 차일피일 미루는 아이처럼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댓글 덕분에 새벽 2시 넘어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가 넝마처럼 널부러져 잠을 잤다. 그리고 꿈을 꿨다. 세 사람이 꿈에 나왔다.
지금 사찰의 전주지스님은 불공제일 스님(?)으로 알고 있다. 그 분이 나오더니 나를 바라보셨다. 뚫어지게 보시기에 속으로 '저 스님이 나를 좋게 봐주시나 보네'했는데 스님이 말하길, '너 얼굴이 시체처럼 핏기없고 너무 하얗잖아' 하시면서 '양 손을 들고 만세를 세 번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손을 세번 들면서 '감사합니다'하니(왜 그런지 모르지만 지금 만세가 적절한가를 순간 고민하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신다. 그 표정을 보고 다시 양 손을 번쩍 들면서 만세를 세번 외쳤다.
그리고 나니 현재 사찰의 친구가 옆에 서더니 나에게 넌지시 '지금도 할 수 있으니 하는 것은 어떄?'한다. 정확하지 않지만 꿈속에서는 불공, 기도, 뭐 그런 것으로 이해가 되었으나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친구가 벽에 기대 앉아있었다. 많이 지친듯이 보였고 꿈에서는 낯선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꿈을 깨고 나서 한참 뒤에 낯익은 느낌에 곰곰히 생각하니 초등학교 친구였다. 그 상황에서 몸이 이상해서 옷을 걷고 보았다. 상체, 배, 다리까지 불긋 불긋한 것들이 다 피어올랐다. 살짝 따금거리는 느낌이었는데 이 느낌은 꿈을 깨도 나서도 아주 약하게 남아있는 듯 했다. 열꽃처럼 피어오른 것들은 마치 상처에 딱지가 앉을 때처럼 까칠하게 느껴졌는데 친구가 그런다. '나도 그래.'
꿈을 깨고 너무 선명한 잔상에 아주 잠깐 생각했다. 솔직히 내면의 어떤 현상에 대한 것인지 시간이 좀 지나야 명확해질 것 같다. 지금은 지금의 생각을 적을 뿐이다. 별로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었다. 바르지 않고 흐렸던 하루 이후에 꾸었으니 더 그대로 널부러져 있고 흐려져 있다면 온몸이 그런 병고에 빠지듯 삶이 힘들어지지 않겠는가. 내면이 무엇을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 의도는 일단 성공했다고 본다.
많은 생각을 했다. 스님은 '하라'고 했다. 나의 상황, 뜻을 무시하고 단지 하라고 했다. 이것은 불성에 가까운 것이라 본다. 그것은 내가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만족할 때까지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을 따름으로써 나는 불성이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생기를 찾게 된다.
현친구는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나의 상황, 뜻을 존중하고 있다. 여기에는 내가 어떻게 뜻을 세우고 펼칠지에 대한 선택이 허용된다. 처음에는 지금이 백중기간이기 때문에 어떤 기도도 올리지 않은 나에게 그 기도를 하면 어떻겠냐는 내면, 아니면 외적 존재의 권유 정도로 이해되었고 그래서 '기도를 올려야겠다, 어느 사찰에 올려야 할까'를 고민했었다. 그런데 스님의 '하라'와 비교되는 '어떻겠냐'의 어조를 알아차린 순간 생각을 바꿨다. 나를 바라보는 영가를 위해서 최상의 것을 고민하여 해주리라 마음먹었다.
옛친구는 '나도 그렇다'고 했다. 그 열병처럼 피어난 온몸의 병증에 나도 들었고 그도 들었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와 내가 그 병증에서 벗어날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현재의 살펴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바른 행을 지어가는 것, 그것으로 친구도 편안해지고 나 역시 편안해지기를 바란다.
어제 밤부터 다시 법화경을 잡았다. 오늘 아침에는 능엄주도 읽었다. 그리고 늘 마음에 담지만 아미타불도 불러야겠다 생각했다. 이 모든 공덕으로 꿈의 경계가 밝아지고 그리하여 현상이 밝아지기를 발원했다. 꿈에 대해 적은 내가 노파심에 덧붙인다. 꿈에 사로잡히면 마장에 빠지는 것과 같다. 만약 내가 만나는 이것이 무엇인가를 사유하지 않으면서 그저 꿈속의 현상에 사로잡히고 그것을 모든 것인듯 받아들이고 움직인다면 나는 그저 마장에 놀아나는 어리석은 불자가 될 뿐이다. 떨어지는 비가 온대지를 평등하게 적시지만 그 비를 받아들이는 대상에 따라 다른 현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꿈을 꾸는 우리도 그러하다. 그 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좋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것은 꿈에 국한되지 않으니 신묘한 모든 현상도 그러하다 생각한다. 보이고 들리는가? 그것을 불자로서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해결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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