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남의 복으로 살까.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8. 12. 21:18

감사. 덕분에 좋은 사유거리가 생겼음. 그런데 내 마음 걱정말고 자신 마음을 먼저 신경쓰기 바래요. 그게 좋아요.  


오늘 어떤 글을 읽었다. 조금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다 적은 것은 아니지만 의미를 따르는 것에는 충분할 것 같다.

'인간은 자신의 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의 복으로 산다.

다른 사람에 의해 내가 잘되는 것은 인연으로 오므로 인연을 소중히 하라.

행불행 모두가 인연에 의해서 만들어지므로 자신의 복보다 남의 복이 많다.

남의 복이란 좋은 인연으로 도움받는 것을 의미한다.

사주는 자신의 복을 보지만 불법은 남의 복인 인연을 바라본다.

좋은 인연은 좋은 복을 만들고 나쁜 인연은 나쁜 복을 만든다.'


좀 명확하게 알고 싶어졌다. 인연에 대해서. 대략 알고 있지만 정확히 인연은 무엇인가 지식백과를 통해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인과 연은 안에서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과 그 인을 밖에서 도와서 결과를 만드는 간접적인 힘이 되는 연줄을 말한다. 모든 사물은 이 인연에 의하여 생멸한다고 한다.

2. 불교의 입장에서는 일체 만물은 모두 상대적 의존관계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한다. 동시적 의존관계(주관과 객관)와 이시적() 의존관계(원인과 결과)로 나누어진다.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 직접적인 원인을 인()이라 하고, 인과 협동하여 결과를 만드는 간접적인 원인을 연()이라 한다. 가령 농사의 경우에 종자를 인이라 하고, 비료나 노동력 등을 연이라 한다. 이 경우 아무리 인이 좋다 할지라도 연을 만나지 못하면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3. 그러므로 인도 물론 좋아야 하지만 연도 또한 좋아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행복하게 살려면 상생 상화의 선연을 맺어야 하는 것이다. 기계적 의미의 원인과 결과 관계가 아니라 인()이 있어서 연()을 만나면 반드시 과()가 있다는 말인 인연과를 줄여서 인연이라고도 한다. 인 없이 연만으로는 과가 있을 수 없고, 인이 있다 할지라도 연을 만나지 못하면 역시 과가 있을 수 없다. 인과 연이 있으면 반드시 과가 있고, 과가 있다는 것은 인과 연이 만났다는 뜻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연 [因緣] (원불교대사전)



인연의 의미를 씨앗과 조건으로 알고 있었는데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자, 인연은 이런 것이다. 씨앗을 뿌리는 자는 누구인가. 다른 이가 아닌 나다. 그 씨앗을 언제 뿌렸는가. 과거에도 뿌렸고 지금도 뿌리고 있다. 그러니 이미 뿌린 씨앗은 어쩔 수 없고 이제 뿌리는 씨앗은 좋은 씨앗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 누가 짓는 복인가. 내가 짓는 복이다.


이제 씨앗이 발아하도록 조건을 가꾸어가는 이는 누구인가. 나를 위시한 여러가지 대상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환경이 그저 우연히 조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에게 조성되는 환경을 결정하는 것은 내가 지어온 업, 지금 지어가는 업과 관련이 있다. 나의 노력을 빼놓고 말하기 어렵다. 혹시 노력해도 안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가. 누군가는 인복이 많다고 말하고 싶은가. 그런 현상들을 불자는 그 사람이 과거에 지어온 선업의 과보라고 이해한다. 그러니 결국 좋은 환경이 일어나는 조건은 남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나에게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일련의 현상을 살피면 내가 지어 내가 받는다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남의 복이 아닌 내 복으로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그러니 모든 인연에서 불자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선업을 행하는 것이 좋은 복을 불러온다고 볼 수 있다. 남의 복으로 사는가. 글쎄다. 내 생각에는 내가 뿌리고 힘써 가꾼 복에 의해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것이 그림을 그리는 자의 자세이며, 그린 그림을 받아들이는 자의 자세이다. 

  

어떤 이해에서 사주를 자기복이라고 하고 인연을 남의 복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인연은 나를 위시한 대상의 연결을 포함해야 한다고 본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은 것을 말함도 아니니 나와 남이라는 이분적 사고에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맞지 않은가. 결국 나의 삼업이 인이 되고, 무엇을 하는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연이니 이것을 남의 복으로 산다고 주장하면 많이 이상해진다고 생각한다. 


사주를 보지 말라는 것은 자기 복을 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해진 것으로 알아 매이거나 머무는 마음을 경계함이라고 생각한다. 정해진 길이 있다고 해도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불법은 남의 복인 인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연을 통해 일어나는 과보를 말하는 것으로, 나에게만 또는 남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핵심은 나에게 있다.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다소 미묘하여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인연을 귀히 여기며 살아가라는 이야기라면 앞선 백과사전에서 설명되었듯이 일체의 만물이 상대적 의존관계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을 거론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모든 현상은 홀로 존재하지 못하니 결국 상대의 도움으로 존재 가능하다. 그러니 이것이 남의 도움이라고 하면 도움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