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불교카페에서의 일본불매 주장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8. 13. 08:35

카페에 '우리는 함께 가야 하는 도반'이라는 글이 궁금해서 열어보았다. '전에는 눈밝은 이들이 정성스런 조언을 해주었는데 지금은 없는 것 같다. 개인사정이 있겠지만 논쟁때문인 것 같다. 카페가 요즘 과격해졌는데 눈밝은 이들이 다시 관심갖게 청정한 카페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내용이었다. 안그래도 일본이나 미국, 북한 관련하여 정치적인 제목의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 것 같다 싶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가 확인해보니 일본불매운동을 촉구하는 글로 인한 마찰때문인 것 같았다. 오늘은 잠시 이것을 적어보고 싶어졌다.


일단 나도 일본 정부의 주장을 들으면 참 웃기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한다. 과거의 잘못을 알면서도 회피하는 모습이 탐탁치 않으며 그래서 불매운동을 강력하게 촉구하지는 않지만 구하여 쓰지 않는다. 일본물건이라 해봤자 예전에 산 유니클로 의상, 다이소에서 샀던 문구류, 카레 정도인 것 같다. 고통을 받았던 조상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고 일본의 망말을 들으면 어이없어진다. 나도 대한민국 국민이니. 그런데 말이다. 불자라면 조금 달리 바라보고 달리 대응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모습이 같아도 마음이 다르면 전혀 다른 대응이 된다고 생각한다.


신심깊은 불자라면 인과를 알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겪은 고통에 이유가 있을 것임을 가늠하며, 고통을 준 결과가 있을 것임을 예측한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적지는 않겠지만, 일의 원인과 결과, 그 흐름을 아는 것이 지혜다. 내가 한대 맞았으니 나도 한대 때려야 마땅하다는 마음은 인과를 통찰하는 지혜와 거리가 있다. 서로 악순환을 되풀이하자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에서 그런 이치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어렵겠지만 감정적인 호도가 아닌 합리적인 대처를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되며, 또 개개인의 불자들은 인과를 생각하여 오늘의 마음과 행을 결정하면 좋을 것 같다. 심은대로 거둬지니 일본의 만행도 결실을 이룰 때가 있을 것이다. 그 결실 이룰 때 우리는 받을 몫은 그 상황을 대하여 어떤 마음을 내고 어떤 행을 했는가로 정해진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국가가 아닌 개인의 일로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만약 어떤 불자가 화나는 상황을 만나 고민한다면 부처님 가르침에 비추어 어떻게 조언할 것인가. 상대가 잘못되었으니 너 역시 만만하게 보지 못하도록 화를 내는 것이 좋다고 할 것인가. 그 사람은 불법의 이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것으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국가간의 일도 어찌보면 이와 다르지 않다. 나를 향한 악심을 대하여 자비심을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불자라면 그 악심내는 대상에 대해 똑같은 악심을 내지 않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화나는 상황을 맞이하여 그 감정에 의해 움직인다고 해도 불자는 그런 상황을 통찰하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아닐까.


따지고 보면 나 역시 일본 불매를 하고 있지만, 분노나 원망에 뿌리를 두지는 않는다. 물건 구매의 선택시 바르지 않은 마음을 내는 이들에게 동조하지 않는다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 되려나. 어찌되었든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은 뿌린대로 거둔다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어리석은 행태의 결과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가리라는 확신, 어리석은 행태의 괴로운 결과에서 서로가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램, 이것을 마음에 두고 있다. 개인을 대하든 국가를 대하든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오늘 당신의 불매주장은 어떤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불매를 주장하며 주고받는 마음은 얼마나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당당한가.


고등학교 때 일본의 한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그 때 내가 만난 일본 아이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나는 과거사를 생각하면 일본을 좋아하지 않지만, 너를 만나 기쁘다.' 당시 자신의 나라가 싫다는 내 말에 좋은 감정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라도 역사를 제대로 알 기회가 있었다면 그도 내 마음을 이해했을 것 같다. 만약 그와 내가 친구가 되어 지금도 만난다면 서로를 이해하고 이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일반인도 이럴 것인데 우리가 불자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기독교에 대해서 불교는 원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니 이 마음 새겨 우리의 행에 미움을 없애는 날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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