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글의 인연을 살피는 것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8. 12. 22:19

법화경에 보면 '법의 앞뒤를 안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많이 나온다. 법을 제대로 통찰하여 안다는 것인데 그런 구절을 읽을 때마다 마음에 닿는 바가 많다. 또 '사람의 뜻을 안다', 이와 비슷한 표현도 여러차례 나온다. 언행 등에서 그의 의도를 안다는 것인데, 수행자인 나도 점점 그렇게 되리라 믿고 점점 그렇게 되리라 발원한다.


경에서 말하는 것과 사뭇 다른 수준이지만 우리가 글을 쓰고 읽는 때에도 비슷한 작용이 일어난다. 사람의 통찰력, 이해력의 문제일 것 같은데, 글을 하나 읽고 쓰더라도 그 앞뒤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누가 그런 글을 썼는지, 왜 그런 글을 썼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그런 맥락을 알아야 제대로 글의 의도와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한번 그런 시각으로 읽어보라.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밑도 끝도 없이 악담을 하는 이들이 가끔 있다. 처음에는 그 글 자체가 마음에 들어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배경을 살피면 많은 경우 답이 나온다. 처음 본 필명인데 악의적 댓글을 다는 이들 중, 공왕불 기도를 하는 이들이 상당했었다. 기도에 대해 경전을 들어 의문을 제기하는 내 글이 많이 불편했을 것이고 쉽게 말해 기분나빴을 것이다.


그것을 알면 그 글이 그대로 수용된다. 기분나빠 적는 글임을 알게 되기에 그 내용을 크게 마음에 두지 않는다. 단지 반대하는 마음을 알기에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글에서 보여지는 성품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이라 표현해야 적절할지 모르지만 감정에 치우친 표현, 원색적인 표현, 불자를 향해 적을만한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회에 가자고 전도하는 이의 행실이 올바르지 않다면 그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겠는가. 그것과 비슷하다. 필요한 법은 거짓된 사람이 아닌, 진실된 사람에게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바탕으로 적은 댓글을 캡처해서 '오죽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까' '카페에서 활동하지 말라'는 댓글을 올리는 사람이 있었다. 글의 인연을 알지 못한 것이니 의미있다고 생각않는다.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을 앞뒤 가리지 않고 취해서 내세우는 것이니 말이다. 내 마음 운운하는데, 자기 마음을 살피고 나서 내 마음 살피라고 말하는 것이 맞지 싶다. 이렇게 따라다니면서 필명 바꿔가며 글적는 모습과 올리는 글의 내용이 그런 말을 할 상황이라고 생각들지 않는다. 온 몸에 오물이 묻은 사람이 당신 더럽다고 하면 고개 끄덕이기 어렵지 않겠는가. 자신이 청정해져야 무엇이 더러운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거니와 주장하는 청정함이 힘을 얻게 된다.


살핀다고 다 알아지지 않을 것 같긴 하다만, 수행은 그런 것을 점점 가능하게 한다. 어제 오늘 내 글에 댓글 적은 이가 어떠한지 이런 과정을 통해 꽤 많이 알아졌다. 그래서 씁쓸한 웃음이 지어진다. 내가 잘 그러지 않는데 그 방문과 접근을 사절한다. 내 역량을 넘어서는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