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누구한테 잘하라니

향광장엄주주모니 2020. 4. 22. 13:30

늘 함께 하니 부모님과 가끔 부딪힐 때가 있다. 잔소리가 되기도 하고 짜증이 되기도 한다. 요즘 잔소리나 짜증의 빈도가 올라가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는데 어제가 피크였다. 어제 사건의 핵심어는 어머니의 고혈압과 두 번의 병원행(응급실 포함), 그 전에 있었던 나의 조언과 어머니의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어머니에게 얼마나 잔소리를 했겠는가. 죄인이 된 듯 크게 반응도 못보이는 어머니를 태우고 응급실로 이동하면서 아이타이르듯 몇가지 이야기를 했더랬다. 아픈 사람에게 잔소리라는 이 대목에서 이미 내 마음이 얼마나 형편없이 돌아가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물론 반복되는 일이기에 내가 지쳤고 화가 났노라는 나름의 변명을 할 수 있지만 보살심과는 멀고도 멀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한심한 사람아. 누구한테 잘하라니. 너나 잘해야지.' 던진 말을 생각하는 순간 부끄러워졌다. 왜냐하면 어머니에게 따지고 타이르듯 건넸던 모든 말들이 불자로서의 내가 고쳐야 할 나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지만 보여지고 느껴지는 것들이 온통 바르게 수행하라는 것임을 알면서도 요즘 살짝 틀어져있다. 내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수호자는 아마도 내가 어머니를 보는 것 이상의 답답함을 느끼면서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이 사람아. 조짐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어서 제대로 하시게. 그것이 참으로 필요한 일, 좋은 일임을 알면서도 왜 허튼 일을 하고 있는가.'


어머니에게 겁을 주기 위해 악담 비슷한 말을 했더랬다. 그 말을 하면서 나도 그런 선상에 있지 않을까를 살짝 걱정했다. 나를 둘러싼 내, 외부의 현상들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싸인을 보내주고 있음에도 무심하다면 어느 순간 뚝하고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누구나가 그런 것이지겠만, 선택의 결과를 즐거이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우리는 깨닫지 않아도 나름 자유로울 수 있다. 물론 어깨 위로 백근, 만근의 짐을 진 상태로 자유롭다 외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겠지만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선택은 나의 몫이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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