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문득 공왕불기도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서 나를 비난하다가 자신들이 집단이 아니라고 하면서 길게 적었던 글을 블로그에 그대로 올린 글을 보았다. 다시 읽어보다가 순간 큰 웃음이 터져나왔다. 웃겼을까. 사실은 무서운 일일 것이다. 자신들이 그렇게 신봉하는 이가 했던 기본적인 주장에 대해 그 글에서 적길 그렇게 이해하는 내가 안타깝다고 했다. 그런 상황이 사실은 말할 수 없이 무서운 일 아니겠는가.
내가 마음에 걸려한 주장은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것이었다. 그 기도만이 공덕있다는 것은 그들이 신봉하는 이와 그를 따르는 이들이 한결같이 전면에 내세우는 주장이다. 방송을 한 번 보라는 권유로 방송을 하나 보았고 가르치는 이가 적은 법문도 읽어보았다. 내가 다른 이들의 글을 통해 접한 것보다 훨씬 강한 내용이었다. 내가 아는 법화경과 그 외 부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밤을 새워 무엇이 이상한가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어긋난 이해로 생각되었다.
글 하나를 읽어도 적은 이의 내면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얼마나 안정되었는지, 무엇을 담고 있는지, 감추는 것이 있는지. 그런 것들을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가늠할 수 있다. 카페에서, 또 인터넷에서 글을 주고 받을수록 드러나는 모습은 감정적이고 산만했고 공격적이었으며 자신들만 바르다는 상과 다른 말을 하는 이를 가볍게 여기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대부분 그러했다.
그래서 기도가 이상하다고 생각들었다. 바른 기도라면 하면 할수록 자신을 돌이키게 되므로 나쁜 말과 생각, 행동을 벗어나게 한다. 또 생각해보라. 환경이 편안하면 모두가 좋은 얼굴을 보일 수 있다. 역경이 닥쳐야 진짜 그 사람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다. 법을 달리 말하는 한 개인이 그들에게 역경이었다면 마주하여 드러낸 모습이 그들의 진면목일 것이다. 전혀 불자답지 않았으며 법화경의 가르침이 배어있지 않았다.
그런데 기도에 나쁜 기도가 있을 수 있는가. 내 생각에는 없다. 기도는 다 좋은 것이다. 그러니 문제가 있다면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문제이며 그렇게 기도을 이끌어가는 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스스로 나무묘법연화경을 할지언정 그들과 함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드는 것은 순간이며 무섭게 물들기도 하니 말이다. 가리는 것이 필요하다.
정말 궁금하다. 나만 보이고 느껴지는 것일까. 많이 위험하며 두려운 일이 주변에 펼쳐져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듯 부처님을 진심으로 만나고자 하며 바르게 수행해가는 이는 편안하다. 그러니 편안할 일을 해야 한다. 부처님을 만나고 바르게 수행하는 것.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래야 제대로 만날 수 있다. 사람의 말에 의지하면 위험하다. 나중에 탓해도 소용없다. 무엇이 되었건 바라고 선택을 한 것은 결국 자신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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