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염불할 때 마음자리에 대한 생각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6. 16. 12:10

염불에 대해서만 글을 적는 이가 있다. 초기에는 많이 읽었는데 요즘은 거의 읽지 않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큰 기쁨이 없다. 내 상의 문제, 마음의 문제,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은 염불할 때 마음자리의 구체적 자각이라는 글을 있어 읽어보았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글의 핵심은 염불할 때 내 자성불을 부르는 것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조금 달리 말하고 싶다. 나는 부처님을 생각할 때 온 법계에 가득한 부처님을 생각하고 동시에 내 안의 부처님을 생각한다. 어디에서 시작해도 결국 두 부처님, 내 안의 부처님과 내 밖의 부처님을 만나게 되고 점차 분별하는 마음자리를 떠나게 된다고 믿고 있다. 결국 불성은 다른 듯이 보여도 근본이 같다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염불을 할 때 밖의 부처님을 불러도 안의 부처님이 있음을 알게 되며 그 부처님을 만난다. 안의 부처님을 불러도 밖의 부처님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 부처님을 만난다. 비슷한 이야기를 또 하면 이렇다. 불상을 향해 절을 할 때 밖의 불성에 절하기는 일이기도 하고 내 불성에 절하는 일이기도 하다. 잘못하면 말장난같아지기에 이런 표현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상황이 그러하여 적어봤다.


부처님 법을 배우면서 느끼기에 하나에 지극해지면 다른 것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것에 또 지극해지면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도 같다. 그래서 염불을 할 때 안 부처님을 불러 시작하든 바깥 부처님을 불러 시작하든 결국은 같은 지점에 있게 되다고 믿는다. 염불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를 부르는가의 자각보다 얼마나 청정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는가가 아닐까 싶다. 물론 누군가가 정색을 하고 안팎의 부처님 중 하나만을 택하라고 하면 안의 부처님을 택하겠지만 불편하고 불필요한 분별이라고 생각한다.


또 덧붙여 말하자면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에 힘입어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불자라면 그 염불 안에 안 부처님을 담든 바깥 부처님을 담든 중생의 구제를 위해 모든 공덕을 베푼 아미타부처님에 대한 지극한 마음을 담아 부르는 것이 맞다고 본다. 나무아미타불 육자에 담을 마음은 그런 마음이 아니겠는가. 감사의 마음, 찬탄의 마음, 나도 부처님을 따르겠다는 마음. 그것이 없다면 앙꼬 빠진 찐빵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글이 충분하게 적어지지 않은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최선이다. 더 밝게 알아진다면 다시 적을 날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도 아미타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