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밥짓는 꿈

향광장엄주주모니 2020. 7. 18. 10:20

음식을 차리고 먹는 것에 대한 꿈을 종종 꾼다. 수행과 관련하여 스스로를 가늠할 수 있는 꿈일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1일 기도라는 것을 하던 시절, 엄청나게 화를 냈던 날은 마당에서 밥을 짓던 솥단지가 깨지는 꿈을 꿨었다. 꾸고 나서 스스로 알아차리길, 내가 기도로 쌓은 공덕이 곧 솥 2, 3개로 밥을 짓는 것과 같으며 그것도 화를 내서 다 사라져 버렸구나 했다. 당시 기도의 공덕은 휑한 마당에 2, 3개의 솥으로 밥을 짓는 정도의 크기였다. 내 수준이 그러했던 것 같다.

 

어제는 나를 지켜볼 신중에게 혼잣말처럼 이런 저런 말을 했었다. 아무튼 요즘의 나, 내 주변에 대해 생각을 정해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의 바탕에는 아직 나 괜찮을까라는 걱정된 마음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해서인지 꿈에 복잡한 내면이 반영되어 흐른다. 모스님이 나오는 꿈 한 조각, 그리고 직장 사람들이 나오는 꿈 한 조각이었다. 스님 나오는 꿈은 좀 어려워 패스, 직장의 꿈은 좀 쉬이 가늠이 된다. 꿈속 상황은 좁은 거실 방에 사람들이 올망졸망 많이 앉아있었고 한켠의 주방이 어지러웠다. 내가 주방을 이끌어 밥을 해서 먹여야 하는데 쌀도 많고 전기밥솥도 여러 개 있었는데 식재료나 주방도구들이 정리되지 않아 산만함 그 자체였다. 일할 사람들도 많았는데 내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서 시간이 지나도 일이 진척되지 않았다.

 

더 세세한 상황들이 있지만, 대략 살펴보면 지난 꿈과 비교하여 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집이 좁지만 먹일 사람들이 꽤 있다. 쌀도 충분하고 밥솥도 충분하고 일손도 충분하지만 정리되어 있지 않다. 이들을 이끌어 공간을 정리하고 맛있는 밥을 지어 먹이는 일이 나에게 달려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일들의 산만함은 나에게서 나온다. 정리하고 이끌고 밥을 하는 행위는 어떤 것일까. 아마도 주변을 향해 어지럽게 흘러가는 흐려진 마음을 되돌리며 꾸준하게 경을 읽고 염불을 하고 선행을 베푸는 일이 그것 아닐까 싶다.

 

법화경 천독한 어떤 보살님은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밥이 다 지어졌는데 뭐하는가"라고 했다지. 나는 어떤가. 휑하고 별 볼 일 없는 시골의 마당에 솥단지 2, 3개를 놓고 시작했던 나의 수행은 꾸준함으로 인해 압력밥솥 여러 개로 진화되고 증식되었으며 쌀도 쌓여있고 밥 먹일 대상도 일할 이들도 여러 명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내 모습으로는 그것을 최상으로 활용하여 선으로 귀결시킬 힘이 부족하다. 다시 꾸준히 수행하여 환경을 정리하고 여러 사람들의 움직임이 배고픈 이들을 잘 먹이게 하는 일이 되도록 할 일이다. 정리하여 충분히 밥 지을 일이다. 그러고 나서 먹이고 다시 더 크고 쾌적한 곳으로 더 많은 이들을 이끌어 먹여야지 않겠는가. 힘내어 잘 살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좋다. 얼빠진 나를 따라 얼빠지게 일어나는 경계들아. 이렇게까지 보여주니 그 진심을 알겠다. 그동안 닦아온 것으로 인해 만들어진 틀을 더 견고히 하고 깊게 하고 넓게 하기를 바라는 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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