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법화경 독송회를 가지 않았다. 이런 저런 핑계일 뿐이다. 이런 저런 꿈을 꿨다. 꿈 속에서도 내 정신으로 이런 저런 말을 했다. 언젠가는 너 마음씀이 참 우습다 싶기도 한데 오늘 꿈 속에서 생각과 말은 봐줄만하다. 깊은 무의식까지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가 드리웠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자나 깨나 염불을 말하는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맞는 말이지 않은가. 꿈에서도 누군가에게 염불을 해주거나 시시때때로 염불에 마음을 두는 것을 귀히 여겼던 적도 있다. 염불하다 잠이 들고 잠이 깨면서 아미타불하는 그 마음을 귀히 여겼었다. 지금은 그 생각이 맞다 하면서도 크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소리내거나 관하지 않더라도 늘 그 불성에 마음닿아 있다면 그것이 나에게는 곧 일종의 염불삼매이다. 생활을 귀히 여긴다. 사람 속에 살아감을 귀하게 여긴다. 밥을 먹고 말을 하고 일을 함을 귀히 여긴다. 그 안에서 늘 한 자락이라도 불성의 자비와 지혜와 닿아있다면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염불삼매다.
꿈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그러하다. 의식의 통제를 받기 어려운 모습이 꿈일테니 그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함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가깝다면 부처님을 살아내고 있으며 가르침대로 수행하려고 노력한 결과라 생각한다. 시작은 했는지, 아니면 시작조차 못했으면서 착각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변화한 나를 느낀다. 아니 변화한 나를 느끼려 한다. 꽤 많은 이들이 부처되기 어렵다 하면서 가끔은 포기를 하고 가끔은 성불을 말하는 이에게 "당신이?"라는 의구심 가득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런데 묻고 싶다. 확신이 없는가? 얼마가 걸리든 부처될 것임을 믿으며 지금의 삶이 그 과정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 걸리지만 오래 걸린다 생각않는다. 힘들지만 힘들다 생각않는다. 내 마음이 그러하다. 절망도 없으며 낙담도 없으며 그냥 지금이 좋아서 오는 날도 좋기를 바랄 뿐이다.
가끔 찾아읽는 스님의 법문이 있는데 오늘 읽은 글 중 조금 적어보려 한다.
'나란 상을 내려놓으라고 금강경에는 말하고 있다. 나도 내려놓지 못하는데 어찌 남에 대한 배려심을 가지려 하겠는가. 이것을 넘어서는 마음을 갖지 못하는 이는 중생 벽을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 어리석음은 빨리 멈출수록 행복하게 산다. 그 행복을 이루기 위해 가르침을 접하는 것임을, 부처님은 모든 경전을 통해 강조하셨다.
경을 읽었다면 그 말씀대로 행동하라. 그래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그는 결코 완전한 행복을 얻지 못한다. 옛말에 겸손한 사람은 얻고 잘난 척하는 사람은 잃는다는 말이 있듯이, 불자가 가장 먼저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항상 겸손해야 함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
우리는 불자다. 불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바로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보살행을 하는 이를 말한다. 금강경에 보살이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렇게 마음을 내야 한다고 한다.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는 보살이 아니라는 말씀을 잘 새겨야 한다.'
어제 카페에서 따라다니며 글을 적던 이가 모든 댓글을 지웠다. 무슨 마음일지 모르지만, 그를 마주하며 가졌을 나란 생각을 돌이킨다. 나도 그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참으로 자유로워지기를, 참으로 자비이기를 발원한다. 우리의 존재를 모두가 기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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