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단 일이 있어 지난 주말 구인사를 다녀왔다. 마음산란하던 일이 있었는데 이럴 때가 부처님과 더 진지하게 마주할 순간이리라 생각들었다. 나를 고민하고 이미 벌어졌고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가늠하면서도 결국 모든 것을 부처님께 맡긴다는 심정이 되었다. 불자로서의 여러가지 고민들로 어지러운 마음이었다. 천태종과 인연 맺고 있지만 불교는 불교, 불자는 불자일 뿐이라는 마음이라 모든 종단이 내게는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사찰에서 활동하면서도 늘 조금은 완전하게 안착되지 않은 마음이 스스로 느껴졌었다. 구인사로 출발하기 전 평소 인터넷을 통해 법문을 즐겨 찾아 읽었던 스님의 글을 읽고 고민있는 나에게 축원해주시라 청을 했다.
봄이지만 쌀쌀한 기운이 바람따라 느껴졌다. 법당에 짐을 풀고 행사까지 시간이 남기에 사람들을 따라 산아래 자리한 대조사전으로 향했다. 그런데 너무 이상했다. 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는데 햇살이 비추고 파란 하늘, 산으로 둘러싸인 환경은 더할나위없이 조용했고 평온했다. 신기할 지경이었다. 산란함도 걱정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 편안함은 뭐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다. 이 곳에서 내가 완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기억할 수 없지만 자비로운 어머니의 태안에 자리잡은 태아가 이런 마음일까 싶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듯한 이 안전하고 안락한 느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큰스님을 친견하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에 스님의 인도하에 관음정진을 했다. 아미타불을 하는 나이지만 이렇게 행사에서 모든 이들이 입을 맞출 때에는 관음정진을 했다. 그런데 몇번 관세음보살을 부르는데 갑자기 사람에 대한 연민이 마음에서 올라왔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불쌍하다, 안됐다고 솟아오른 그 마음은 어느새 나에 대한 마음으로 이어졌다. 왜 나는 이 정도의 마음일까? 왜 나는 이 정도일까? 불보살을 배우겠다는 나인데 이 정도밖에 안되는 자신에 대한 한탄과 설움으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어느덧 내가 참 잘못했다는 참회로 이어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아니었다. 이상했다. 마음이 평온해졌다. 법당에 들어온 스님은 자신의 몸에 책임을 다하라는 법문을 해주셨다. 미소를 머금은 그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랑니를 뽑으면서 이 내 몸 귀히 여기고 잘 아껴쓰리라 했던 다짐과 이어져 참 신기하다 했다.
밤 10시 넘어 법문을 듣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다. 구인사에서는 기도로 관음정진을 한다. 법당에서 기도를 한 적이 많지 않은데 다른 이들이 관음정진을 할 때 나는 홀로 아미타불을 했었다. 그런데 그 날은 그냥 관음정진을 하고 싶었다. 다른 이들의 수행에 방해될까 신경쓸 필요없이 관세음보살을 내 맘껏 연창하였다. 나는 원래 자는 것을 정말 중하게 여긴다. 시험을 봐도 일단 자야 되고 무엇을 하든 잠을 잔다. 그런데 그 날은 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분만 눈을 붙일까 고민되는 순간이 이어졌지만 졸리면 무릎을 꿇었다가 좌정했다가, 일어나서 걸으면서 관음정진을 이어나갔다. 중간 중간 깜빡 졸기도 했는데 조는 순간마다 꿈처럼 꾸거나 나도 모르게 기도와 상관없는 엉뚱한 소리, 예를 들어 '다 상관없다(?)'는 둥 그런 말을 하는 나를 알아차렸다. 내 정신으로 관음정진하려 무던히 애를 썼다.
기도를 마치고 예불을 보고 나서 잠시 눈을 붙였다. 처음으로 구인사 법당에서 기도 조금하다가 용감하게 잠을 잘 때에는 누군가 팔을 쭉 당기기도 하고 꿈에 관세음보살상에 합장을 하는데 앞으로 꼬꾸라져 땅에 얼굴을 들이받았었다.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코가 아팠었다. 내가 이제 고민을 깊이 하고 마음 다해 불보살을 부르는데 뭔가 답이 있으리라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을까? 없었던 것 같았는데 꿈에 누군가가 법화경에 대한 말을 해주었다. 그 말을 정확히 옮길 수 없어서 적지 않겠지만 잠을 깨면서 내가 법화경을 읽으며 이해한다고 말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했었다. 잠을 깨고 나서 세수를 하고 법당으로 올라가 석가모니부처님, 다보부처님 앞에서 약초유품과 다라니들을 읽었다.
그렇게 주말이 흘러갔고 부처님 앞에서 새로이 발원을 했다. 그 발원은 여기 적지 않는다. 모든 일이 편안해졌다.
안다고 할 바도 없지만 부처님 가르침을 배워오면서 변화된 나를 조금은 알아차릴 정도가 되었다. 이 시간을 통해서 또 나는 한발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에 대한 문제가 아닌 나에 대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다. 인연따라 모두가 부처님 법을 배운다. 그 법을 받아지닌 모습이 어떠할지라도 그 인연이 우리를 이끌어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 너의 스승이 누구냐고 물었다. 불자는 모든 것에서 부처님을 만난다. 그것을 정녕 모른다면 그것이 오히려 의문이다. 내가 만나는 모든 상황, 사람, 환경이 나를 가르친다. 지난 상황이 아름답지 않지만 그것에서도 나는 배웠다. 불자는 결국 자신을 밝히는 사람이다. 그로 인해 주변을 밝히는 사람이다. 구인사에서 만난 불성은 자비를 가지라고 말하고 너를 돌이키라 말하고 법화경을 잘 공부하라고 말한다고 생각한다. 구인사에서 1박 2일을 지내면서 내 안에 일어나는 그 모든 마음이 나를 가르치는 불성의 나툼 아니겠는가.
요즘 법화경을 노래로 배우고 있다. 노래를 통해서 법화경을 전할 수 있다면, 찬탄할 수 있다면 멋진 일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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