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문득 샤워를 하다가 '법에 관한 논쟁을 하지 말라'는 법화경의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샤워, 산책, 이런 시간에 부처님, 법에 대해 많이 생각해서 그런지 가끔 생각이 툭하고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논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또 얼마나 다를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좋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물어온다면 답을 할 일이지, 굳이 글을 적을 필요가 없다' 싶어졌습니다.
단지 나에게 걸어오는 말에 대해 어느 정도로,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편안하고 밝을까가 고민입니다.
어제 있었던 공왕불 기도자와의 대화(사실 대화도 아닙니다)는 이미 무의미합니다.
적어오니 내 생각을 밝혀준다는 단순한 논리로 내세워도 이상하지 않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기도를 주장하며 마음 흐린다 생각들어 그에 대해 일침을 놓고 싶은 뜻도 있었을 겁니다.
나도 무엇이 바른지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내가 '이러하다' 하는 말이 다 바르다고 말할 수 없으며 그 부분을 여과없이 표현하는 편입니다.
내가 믿는 것은 알기 위한 치열한 고민에 부처님이 손을 내어주시고 법계가 반응하리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법에 대한 논쟁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절대적 판단이 유보된다면 무엇이 의미있을까요?
각자가 인연된 자리에서 나름의 노력을 해나가는 것으로 의미를 갖출 수 있습니다.
내가 공왕불 기도를 마음에 담지 않는다고 문제될 일은 없습니다.
단지 내가 배우고 있는 가르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을 하기에 내 근기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뿐입니다.
그것만이 답이라 주장하니 꼭 그런 것도 아니라고 경전에서 배운 법으로 말하는 것 뿐입니다.
하나를 아는 이는 그것을 넘어설 수 없지만 둘을 아는 이는 하나 아는 이를 능히 포용할 수 있습니다.
공왕불기도가 자신의 주장처럼 둘을 아는 것과 같다면 하나를 알 뿐인 상대를 포용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하면 되는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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