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깊어질수록 사람이 바뀐다는 말을 아마도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모든 것이 다 바뀐다고 해요.
몸도 바뀌고 마음도 바뀌고 아무튼 그렇다고 합니다.
제가 엄청 그런 경험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 말에 공감할 정도의 맛은 본 것 같습니다.
법화경을 주장하고 싶으면 법화경 가르침을 따라야 하겠지요?
안락행품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제가 처음 법화경을 읽으면서 참 좋아했던 품인데
아마도 제 부족한 부분이 많이 담겨있어서 더 감흥 있었던 것 같아요.
안락행품에 이리 나옵니다.
"말세 말법시에 이 법문을 홍포하려는 보살마하살이라면
마땅히 네 가지 법들에 견고해야 하느니라"
우리가 법화행자라 주장하려면 이 당부를 자신의 것으로 새겨야겠지요.
네 가지 법에 대한 부분이 짧지 않아 다 옮기기 어렵고
저 역시 그 부분을 간략하게 잘 정리하기 어려운데
(일천한 재가불가인지라),
사람들을 어찌 대할지, 법을 어찌 대할지, 불보살들을 어찌 대할지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한 것들입니다.
그것을 흐르는 큰 틀은 자비이고 공경이고 법 본질에 대한 성찰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안락행품만 잘 새겨도 유익이 정말 큽니다.
부처님의 마음, 뜻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법화경의 법문을 부처님이 어찌 바라보시는지 그 무게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4가지로 분류하여 이런 마음,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시죠.
머리로 아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른 인지의 복은 갖춘 것이니 말입니다.
(오른쪽이라고 쓰여있어도 왼쪽이라고 이해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알았다면 아는 법으로 무장하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해집니다.
법화경을 알았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내 말을 듣고 따라오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반드시 온 존재를 안락행품의 옷으로 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버지로 여기는 부처님의 당부이며
최고의 보물을 제대로 활용하기를 바라는 보물 사용법에 대한 당부입니다.
우리가 안락행품을 두르는 순간
다른 이들을 비난하고 비판하기 어려워집니다.
다만 자비할 것이고 인욕할 것인데 참지 못하는 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늘 안락행품합시다.
법화경에 깊어질수록 변화될 수밖에 없으며
그 변화의 중심에 안락행품이 있습니다.
비난과 비판으로 발판을 삼으려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아니면 어렵겠다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명심합시다.
법화경 안락행품, 우리가 먹고 소화시켜야 할 밥이 아직 많습니다.
'2020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왕(십왕)은 무엇을 말함인가. (0) | 2020.08.18 |
---|---|
(지장경)꿈 속이나 잠결에 온갖 귀신이 나타나, 불법에 대한 생각 (0) | 2020.08.18 |
법화경을 읽으면서 (0) | 2020.08.18 |
공왕불, 남이 틀렸다고 내가 맞는 것은 아닙니다. (0) | 2020.08.15 |
49재에 대한 선지식 스님의 글 옮김 (0) | 2020.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