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를 마치고 이부자리 위에 앉았습니다.
책상 삼아 무릎에 올린 베개 위에 법화경을 잠시 펼쳤습니다.
근무 파트너가 잠시 업무를 마무리하러 간 사이에
조금 읽어야겠다 싶어서 읽던 곳을 펼쳤습니다.
여러 마음인데 요즘 서너 달 잘 읽지 않기도 했고
근무지에서 읽은 지도 상당기간 지났고
내가 법에 목마르듯, 인연따라 목마른 이에게 들려주고 싶어졌습니다.
법사품을 소리 내지 않고 눈으로 읽어갔습니다.
짧은 시간이었고 오랜만이었는데 금세 그 가르침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편안했고 밝아졌습니다.
'참 좋다'는 생각, '그런 것이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법사품 하나만 읽어도
경의 내용을 적어 부처님 가르침이 어떠한가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이 말법시대라 일정 부처의 명호 외에는
공덕이 없다'라고 하는 모 기도의 주장과는 다른 가르침입니다.
불자가 무엇을 따르기에 불자입니까?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기에 불자입니다.
아무리 찬란한 무언가가 있다 주장해도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의 광명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부처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을 말하는 이가 있다면
불자라고 부를지언정 길을 벗어난 가련한 불자입니다.
다시 아버지의 뜻 안으로 들어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유산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 속으로 들어가는 나방 보면 '참 어리석다'하죠.
우리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드라마 보면 답답한 인물들 많은데, 다 자신이 궂은 길을 만듭니다.
우리는 인연, 습, 그렇게 부를 여러 가지 것들로 자기 세계를 만듭니다.
남 탓할 것이 1도 없는 게 다 자기가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 습대로 만들어가는 것을 알아차리고 빠져나오게 하는 길이
바로 부처님 가르침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은 왜 이러지?'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자신의 마음, 뜻을 따라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것의 결과로 인해 고통을 받으니 '참 어리석구나' 싶어졌습니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우리 마음 안에 가장 강렬한 원을 따라갑니다.
나는 나대로, 다른 이는 다른 이대로 세운 뜻을 따라, 원을 따라 흐릅니다.
당신의 뜻은, 원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알아차려야 하지 않겠어요?
다행히 부처의 가르침에 가까워지면 불성에 점차 가까워지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대승의 색으로 존재를 물들이며 지혜로운 편안함을 주장하게 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가 세우는 구체적인 원들도 그렇게 흘러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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