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법회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법사 스님

향광장엄주주모니 2018. 12. 21. 21:38

이러면 안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한데 법회 가는 것이 즐겁지 않다.


오늘은 사찰에서 한 달에 두 번 있는 법회 중 법사 스님을 초청해 법문을 듣는 날이었다. 합창단에 속해 있어서 음성공양을 하기 위해 참석하는 의미도 있는데 요즘 법회에 참석하는 것이 즐겁지 않아지고 있다. 법사 스님을 초청해 법문을 들을 때는 괜찮았는데 오늘 그것이 깨져버렸다. 스님의 설법을 듣다 보니 언젠가 들은 법문이었다. 강사가 짜놓은 레파토리를 그대로 읖조리는 듯 도입을 위한 이야기, 설법을 위해 가져오는 모든 소재들이 동일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럴 수 있는 일이고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힘있게 와닿지 않았다. 법회에 가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권유하는 중요한 일을 주도하는 이가 일 년에 두 번 사찰에 방문하여 똑같은 법문을 설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그것이 최선의 법문일까. 몇 개월 전의 최선이 지금의 최선이 되는 것일까.


물론 경전에서 말씀하시는 바, 부처님의 가르침은 고정되어 있고 그 가르침을 가장 적절하게 전달하기 위해 짜놓은 레파토리일테니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래도 뭔가 마땅치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기에 법이 고정되어 있어도 법을 배우는 이가, 법을 설해야 하는 대상이 변화하는데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 법문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있고 합창단의 누군가는 정말 좋은 법문을 들었다고 하고 주지스님도 훌륭한 스님에게 설법을 듣게 되어 감사하다고 하니 듣는 내 마음이 이상한 것일 수도 있다. 하긴 아무렴 어떠랴. 기억을 못해서 새로이 듣는 법문이 되어 법을 새겼다면 그것으로 족한 일이다. 기억을 하더라도 다시 마음에 굳건히 새겼다면 또 그것으로 족한 일이다.


그런데 그래도 말이다. 살아있는 법문이었으면 좋겠다. 짜여진 레파토리라도 그 안에 말하는 이의 그 순간 불성이 온전히 담겨있고 드러나는 그런 생기있는 법문이면 좋겠다. 아무리 투박하고 서툴러도 진심과 정성에 응하는 불보살이니 세련되고 매끄럽기를 소망하기보다 진정한 자비, 지혜에 뿌리를 두는 부처님의 법문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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