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복지시설에서 대체근무를 할 때 2번 연속으로 함께 팀이 되었던 젊은 선생님이 있다. 애정이 넘치고 일을 똑부러지게 하지만, 자기가 정한 수준에서 아이들이 벗어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보였다. 다소 엄격하게 통제하는 듯 느껴졌는데 그 선생님이 일을 할 때 아이들은 마치 잘 훈련된 군인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딱 알아서 일들이 진행되니, 편하기도 했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임시로 잠깐 일하는 사람이니 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틀에 맞춰 근무하는 것이 필요했다. 내가 들어가 다른 방식으로 일한다면 상대가 기분 나쁠 것은 명약관화하고 또 일도 어긋날 가능성이 크리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걱정한 것은 아이들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로마에 들어가 로마법을 따르는 여행자같이 그들이 하는 방식을 최대한 존중하며 따라가려 했다.)
그런데 두번의 동반근무를 하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식으로 일하면 아이들도 피곤하고 스스로도 피곤할 것이라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두가 행복에 가까워지기 어려운 상황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틀 전에 근무를 하러 가니 기분에 따라 욕을 하는 등 문제가 있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선생님이 근무하던 날 소란이 있어서 1, 2주는 시설에 오지 않는다고 했다. 나랑 동반근무할 때도 오랜 시간 욕설을 하는 아이를 그녀가 호되게 야단쳤던 기억이 있다. 달래주거나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들이 정한 틀을 따라야 했다. 난리의 시간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또 다른 아이, 이 아이도 이기주의 성향이 짙고 다른 이들을 깔보는 등 다소 문제가 있는 편이라고 하는데 아이들과 씻으러 들어가서 혼자만 샤워를 일찍 끝내고 나왔다고 선생님에게 혼이 났다고 했다. 그런 일을 거론하며 시설이 싫다고 어머니에게 말한 것때문에 어머니와 관리팀장이 통화를 한 것 같았다. 그 젊은 선생님이 일하는 날이었다.
아이들 하나 하나의 성향을 다 맞춰준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고 그것이 단체생활을 하면서 배워야 하는 마음가짐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시설을 경험한 적이 없지만, 이 정도라면 좋다는 생각을 할만큼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들의 마음과 행동은 다정했다. 그러기에 아이말만 듣고 시설에 항의하려고 전화한 부모에게 화가 났다는 시설측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결국 비중을 두어 생각할 문제는 선생님의 훈육방식이 괜찮은지이다. 유독 그 선생님의 근무날에만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관리하는 분도 보는 것이 있으니 선생님의 방식이 조금 세다는 것을 알아서 말을 한번 하겠다고 하지만 얼마나 괜찮아질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 그녀에게 이 일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스스로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스스로 행복하지 않은 일은 결국 그 누구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기억이 명확하지 않지만 그녀는 아이들이, 일이 좋다고 말한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한 사람으로 보기에 너무 잡음이 많다. 피곤해 보인다. 좋지 않아 보인다. 적절하게 사랑받는 사람은 안정감이 넘치고 밝아야 하는데 그녀와 함께 하는 아이들은 경직되어 있고 침체되어 보인다.
모든 것이 선으로 귀결되기를 바라지만 무엇이 선인지 잘모르겠다. 무엇에 뜻을 세우는 것이 불성의 자비요, 지혜일까? 마음 바꿔 일 잘하기를 바랄까. 자신에게 참으로 맞는 일을 찾기를 바랄까. 어찌되었든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오늘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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