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주를 읽고 염불하다가 올해들어 시작하지 못한 법화경을 읽으리라 마음먹었는데 너무 외유하는 것이 아닌가 싶긴 하다. 오전에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는데 달린 댓글에 답을 하기도 하고 인터넷을 보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있다. 올해의 독경은 오늘 꼭 시작할 것이다. 목표는 이미 세웠는데 실천이 미흡한 출발이다.
일단 나는 불법의 수준이 하열하다. 굳이 말하자면 초보, 입문단계다. 이제 경전읽으며 기도한지가 4년 된다. 지장경을 일 년 읽었는데 많이 읽지는 않았다. 50독 되려나, 잘 모르겠다. 그냥 읽기만 했지, 숫자를 헤아리거나 하지 않았다. 법화경은 읽으면서 수를 헤아려서 작년까지 152번을 읽었다. 그 외에는 정토삼부경을 한 번에서 다섯 번 안되게 읽었고(경전마다 횟수가 달라 정확히 모르겠다, 아미타경은 다섯 번을 넘을 수도 있겠다.), 금강경을 한 번인가 읽었다.
이런 내가 글을 적었을 때 가끔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당신의 글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책으로 배운 것 같다, 이론적이다.'같은 비난조의 평가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다섯 명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더 많았던가? 아무튼 그런 평가를 들었을 때 좋은 말이 아니라 일단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는데 이게 어찌 생각하다보니 칭찬처럼 느껴지는 그런 일이 되었다. 일단 사람들은 법의 논리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었다. 교학적이라 말하든 이론적이라 말하든 내용상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하열한 수준의 나의 글에 글 자체를 흠잡지 않는다.
그러니 얼마나 칭찬인가. 왜냐하면 내 글은 단순히 다른 이의 말을 베껴 적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하든 배운 바를 바탕으로 생활을 통해 마음에 도달한 바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과에 대해 적는다면 그것에 대한 확신이 생기는 과정을 거친 후에 인과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표현이 부족해서 그리 느끼든 읽는 이가 그런 시각이기에 그리 느끼든 나는 경험을 통해 나누고 싶은 법을 적는다. 대개 그러하다. 생동하는 법이기에 끊임없이 쓰고 싶은 것이 생기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적고 싶은 것들이 문득 문득 생각난다.
비난에서 기쁨을 느꼈다. 비난에서 만족을 느꼈다. 물론 이게 착각이 되면 정말 웃기는 일이 되는건데 ^^ 가끔은 이렇게 생각해서 내 마음 밝아지면 또 좋은 일이 아닐까. 그런 비난의 말, 감사했어요. 또 살짝 밥맛돌 수 있는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줌에 감사와 위로를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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