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렇게 염불에 대해 쓰는 까닭은 '원효, 정토를 말하다'라는 글에 조금은 이상한 댓글이 달렸기 때문이다. 이미 염불을 옹호하는 글임에도 이제 난행과 이행을 알 시절인연이고 자신은 법화경 사경을 몇 번 했노라는 댓글이었다. 권하는 말은 감사하나 이미 염불을 하고 법화경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도 아주 길게.
사실 정토종의 글 중에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그것만이 답인 듯 말하기도 하고 법화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경을 가벼이 여기거나 정토삼부경의 가르침과 다르게 말하는 것. 물론 내가 깊이있게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법화경을 통해 근기따라 법을 받아지니며 모든 것이 정법이라는 것, 어떤 법이든 결국 하나에서 만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이것만이를 말하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 법이 더 낫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받는 사람이 다르니. 불법이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이 사람은 법화경을 3, 4번이나 사경을 했다고 일부러 언급하며 그것을 거쳐서 이행법에 들어왔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마치 법화경에서 답을 찾을 수 없고 염불에서만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답글에 일부러 법화경을 150번 읽었다, 작년에 염불 350만번을 했다고 언급했다. 내가 정말 진지하게 경을 읽고 염불을 하노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충분히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미 염불을 한다고 했음에도 또 다시 댓글 달길 내가 염불도 경도 정성스럽게 하니 부처님이 이제 이 길을 알려주고 싶어 자신이 심부름을 하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런 생각이 든다고. 염불하면 매일 탱화에서 방광을 한다고 덧붙였다. 이때부터 많이 이상해졌다. 이미 들어가있는 길인데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인지, 법화경을 하지 말라는 것인지, 방광을 하는게 대단한 것인지(물론 대단하다, 그런데 그것이 염불을 주장할 이유가 되면 안되지 않을까, 눈에 안보이지만 염불하면 나도 방광한다고 생각한다, 경을 읽으면 많은 존재가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지키는 신중이 늘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사실 아닌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온갖 만가지 생각이 솟구쳤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나도 그 사람의 글을 세 차례인가 읽은 적이 있다. 카페에 정말 많은 글을 올렸는데 조회수가 늘 상당했다. 염불에 대한 글들이었고 개중에는 신묘한 현상에 대한 글들이 꽤 있었다. 개인적으로 신묘한 현상에 집착하는 것이 오래 머물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신묘한 현상을 많이 강조하는(그렇게 느껴졌다) 글들이 조금은 편안하지 않았다. 신묘함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의 글을 읽은 영향도 있다. 그런 나의 생각을 꽤 길게 적었고 어조를 조절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말해주고 싶었고 진심이었다.
답글이 달렸다. 우리는 차이가 있다. 당신은 이건 잘못이니 이렇게 하라고 지적하는데 자신은 누구와 상담하든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채식주의자 몇 년에 관세음보살을 몇 번하고 절을 몇 번하고 나서 만난 아미타부처님이라고 했다. 각자 인연수행 열심히 하자는 다소 딱딱한 말을 던지고 사라졌다. 더 이상 답을 달지 않았다. 그래도 내 말이 그의 뇌리에 남기를 바랬다. 언젠가 생각나기를.
솔직히 내가 마음에 담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나를 포교(? 이미 염불문에 들었는데 권하니 이상한 포교다)의 대상으로 삼은 것 같은데 나 역시 그에게 한번쯤은 말해주고 싶었다. 내 어투나 태도가 기분나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바르게 알고 있는지, 바르게 말하고 있는지다. 입장이 다르니 내 말만 맞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게 귀한 법화법문을 만났음에도 알지 못하고 떠나게 된 것은 법의 문제가 아니다. 그에게 법화경보다 염불이 맞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법화경을 가볍게 여기면서 염불을 주장하는 것이 타당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3년 전에 읽어 정확하지 않지만, 관무량수경에 구품왕생의 상품은 대승경전, 대승법을 귀히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글을 적기 전에 정토삼부경의 해당 부분을 찾으니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 내가 하는 모양새는 경전에서 말하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법화경은 대승의 가르침이다. 그렇지 않은가. 법화경을 경시하는 것은 정토삼부경의 부처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본다.
염불을 하고 법화경의 가르침을 귀히 여기는 나에게 염불문에 들라는 그의 포교는 무슨 말이었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정토삼부경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강 알아서 잘못 말하는 것인지 알고 싶기도 하고 오늘 이런 일을 겪으니 바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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