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스님이 말씀하셨단다. "대승경전이 말하는 다섯가지의 수행법 중 사경을 하지 말라, 5종 법사에 나오는 베끼고 쓴다는 것은 내가 잘 베껴서 남이 볼 수 있도록 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경을 하려면 전자사경을 하라. 사경 대신 경을 인쇄해서 나눠주라."
맞는 말씀이다. 사경의 의미는 사실 경을 써서 다른 이에게 베푸는 것, 다시 말해 법을 읽도록 하는 것에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나도 그래서 일일수행결과를 올리는 한 수행자 카페에 글을 적을 때 법화경을 얼마 읽고 염불을 얼마 했는가 적으면서 늘 나누고 싶은 법화경 구절을 간략하게 적었었다. 글을 여는 이들이 그 구절을 읽어 유익함을 얻기 바라는 마음이었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정리하고 그것을 나누는 것도 의미있지만 법을 나누는 것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했었다. 사경이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사경을 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사경의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유익함이 단지 경을 베껴서 그 경을 누군가에게 넘겨주어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부처님이 법사의 5가지 수행을 말씀하신 그 근본 의미나 목적을 통찰하여 나온 의견은 아니지만, 어떤 수행이라도 그 과정을 통해 법을 이해하고 나누는 일이 된다면 유의미하고 좋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현대의 불자는 사경을 한다고 할 때, 차분한 마음으로 가르침을 옮겨 적는다. 이 때 스스로에게 법을 알리는 기회가 된다. 또 그럼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인연자들이 사경자가 새기는 법의 내용을 함께 음미하는 기회가 된다. 그 뿐인가. 불법 안에서 행하는 작은 선업도 공덕을 이룬다. 정말 멋진 일은 그 공덕을 모든 대상을 향해 회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경의 정성된 마음과 행이 이룬 공덕을 모두와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가르침을 나눈 공덕에 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경 공덕으로 누군가 부처님의 법문으로 인연되어지기를 발원한다면 그 누군가는 법문을 들을 마음밭을 이루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사경을 하지 말라는 스님의 가르침을 대하여 참으로 맞다고 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한다면 잘 하면 되는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무엇을 하지 말라 말하기보다 어떻게 하여야 두루 두루 유익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이 지금 내 근기에서는 마음에 더 닿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성향이 다르다. 사경이 더 좋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경이 두루 복밭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일깨우면 좋을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법을 이해하고 나누는 것은 무엇에도 비교못할 최상의 일이다. 모든 일상은 그 일을 향해 나아가는 작은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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