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서암선사, 청정한 마음(자성청정심)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8. 17. 08:11

서암선사의 자성청정심이란 좋은 글을 옮겨 적는다.


청청한 마음 (자성청정심 自性淸淨心)

마음을 여의주에 비유해 봅시다.
여의주라는 것은 아주 깨끗한 구슬입니다.
이것을 검은 곳에 갖다 놓으면 새까맣게 되고, 붉은 곳에 갖다 놓으면 빨개지고, 누런 곳에 갖다 놓으면 누래 집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빨개졌다고 닦아 내고, 검게 되었다고 닦아 내지만, 천년을 닦아도 닦아지지 않지요.
눈 밝은 사람은 깨끗한 구슬 그대로 보는 안목이 있습니다.
조금 영리한 사람은 그것을 들어내어 빨간 것을 흰 곳에 옮겨 놓는데 그것도 결국은 미련한 짓이지요.
검은 그대로, 빨간 그대로, 누런 그대로 청정하게 보아야 합니다.


법화경에 이르길 삼계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 구절이 다 생각나지 않는데(어디인지 긴가 민가하여 바로 찾지도 못하겠다. 나의 상태 가물가물이다.) 맥락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허상이다, 실상이다 따지는 것을 넘어서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이다. 서암선사님 글에 맞춰 표현하자면 모든 것이 그대로 실상이다.


예전에 누군가 말하길 어디 밝은 것이 있고 어두운 것이 있는가 하고 어디 맑은 것이 있고 흐린 것이 있는가 하지만 서암선사가 말하는 마음 자리에 있는 것, 법화경에 말하는 있는 그대로 보는 그 자리를 밝다고 하고 맑다고 하는 것이다. 여의주를 표현한 것처럼 깨끗하여 만상이 그대로 비춰지는 그 자체를 맑고 밝다고 하는 것이다. 같은 단어지만 이처럼 달리 사용될 수 있다. 그 경계가 보이고 통찰하는 이는 자유자재하여 말에 묶이지 않으니 밝다는 말에, 맑다는 말에 걸리지 않는다.


또 덧붙이자면 어두운 것에 대비한 밝음이라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 무명에서 인연되어 생로병사가 일어나고 온갖 고통이 펼쳐진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러니 무명을 떠나야 진정 편안해질 수 있다. 흐린 것에 대비한 맑음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니 상반된 개념으로 밝음과 맑음을 말해도 부처님의 가르침에서는 전혀 어색해지지 않는다. 무명을 떠났다면 모든 것을 그대로 알게 될테니 여의주의 본성, 그에 비치는 만상을 그대로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보이고 이것으로 자유로운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적은 글은 개인의견이라 참고만 하시고 경전을 많이 읽고 사유하기를 권한다. 아침에 문득 마음에 닿는 글을 읽게 되어 적어봤다. 여기에서 비롯된 다른 생각도 적어보고 싶지만 그건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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