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아버지의 사랑, 나의 착각

향광장엄주주모니 2022. 1. 25. 10:07

올해 들어서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짜인 것 같기도 하고 당연한 수순처럼 1년 간의 방황 후에 그럴 시기가 도래한 것 같기도 하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는 혼자 버스를 타실 정도로 인지상태가 좋았지만 때로는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착한 치매셨고 많은 부분 순진한 아이 같았다. 때문에 옷매무새라든지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대해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함께 사는 자식으로서 나는 많은 부분 아버지 삶에 개입하게 되었다. 좋게 말하면 돌봄이었고 거칠게 말하면 잔소리를 강하게 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나를 귀히 여겨주셨고 그것이 아름답게 남겨진 나의 기억이었다.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여러 차례 꿈을 꿨다. 늘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모습이었다. 사과 같은 먹을거리를 잔뜩 챙겨주고 냉장고를 고치기도 했고 어느 날인가는 이부자리 같은 살림살이를 가져오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맛집에 데려가기도 했다. 돌아가시고도 여전히 가족을 돌보는 책임감과 애정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그 와중에도 생전처럼 아버지의 잘못된 행동을 찾아 지적을 했다. 이불을 밖에서 가져와서 그대로 사용하면 더럽지 않냐고 투덜투덜, 음식점에서는 길거리 자리를 잡은 것이 못마땅해 투덜투덜. 늘 별말씀 없으시던 아버지는 마지막 음식점 꿈에서 겸연쩍은 표정으로 이리 말씀하셨다. '여기만 오면 내 코뼈가 작아지는 것 같아."

 

당시에는 내가 잔소리를 하니 아버지 자존심이 상처받는다는 의미로 이해했었고 '그냥 그런 것'이라고만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꿈의 메시지가 이렇게 이해됐다. '아버지는 베풀고 있으나, 나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과연 그것은 누구의 문제일까. 잔소리를 하는 나는 정말 좋은 것일까. 수차례 나타나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것을 베풀어주는 아버지와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적하는 나. 아버지는 얼마나 답답할 것이며 얼마나 상처받고 있을까.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내 꿈에만 오면 '코뼈가 작아진다'라고 작게 말하던 아버지에게 갑자기 감사함과 미안함이 뼛속 깊이 새겨졌다. 아버지를 위한다는 생각은 완전한 나의 착각이었다. 

 

그런 깨우침이 있은 후 아버지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던 것 같다. 이 경험을 글로 한번 적어야지 하다가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오랜만에 아버지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꿈속에서 나는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를 가고 있었는데 그 길은 오르막길이었다. 당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것을 걸리면 안 된다는 생각, 그리고 그 길은 허용되지 않은 그런 길 같아서 또 걸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페달을 밟았고 큰 무리 없이 언덕길을 올라갔다. 

 

가는 길목에 경비원 같은 아저씨들이 4, 5명 있었는데 그중 한 분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내가 지나가는 것을 저지하지 않기 위해 다른 동료들에게 '내 차로 입구를 막아놔서 문제 될 일이 없다'라고 큰소리를 치셨고 다른 이들은 그 때문인지 나를 쫓거나 막지 않았다. 아버지 말을 듣고 언덕 아래를 보니 회색 승용차가 한대 서있었는데 순간 '아빠는 치매 때문에 운전면허가 이제 없는데 사고 나면 어쩌려고 운전을 하시는 거야!!, 아, 맞네, 폐손상으로 숨쉬기가 힘드니까 이런 언덕길을 그냥 다니는 것이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상하게도 이번 꿈속에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숨쉬기 편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냥 생전의 아버지로 인식하고 있었고 차 운전하는 아버지를 걱정하다가 꿈에서 깼다. 깨고 나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 잔소리를 안 했다. 다행이다', '왜 경비원이지? 돌아가시고 고생하고 계신가? 공덕이 부족한가', '아, 지금 나를 도와주신 거구나. 나를 도와주시려고 경비원으로 변장하신 거구나. 이게 아빠 최선의 지원이겠구나' 

 

물론 이것은 모두 혼자만의 상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꿈과 현실을 통해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 사랑을 내 입장에서 판단하고 지적하는 것이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옹졸함과 교만이라는 깨달음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너무 빨리 꿈을 깨서 잔소리를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을 알았고 생각할 수 있었으니 희망이 있다고 본다.

 

생각해보면 이런 일상이 나의 수행인 것 같다. 독경을 하든 염불을 하든 절을 하든 내면을 향하고 불성을 향하는 시간이 분명 필요하지만(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가는 길이 어떠한지를 볼 수 있게 된다) 생활 속에서 나 자신이 정말 좋은 길을 걷고 있는가 확인하면서 진짜 길을 걷게 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바른 앎이 있어지고 그런 앎이 현실의 삶과 점점 일치화된다.

 

오늘은 자신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자신이 바르다는 굳건한 믿음으로 타인에게, 특히 자신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타인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면서 혼자 당당해하고 기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