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어머니의 음식 맛

향광장엄주주모니 2018. 10. 12. 22:48

나이가 들면 음식의 맛이 변한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어머니 음식 맛은 이미 절정기를 넘어가서 쇠락기에 접어든 듯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언제부터인지 그 맛이 좋아졌다.

엄격히 말하면 약간 짤 때도 있고 싱거울 때도 있지만, 맛있다는 범주에 들기에 충분했다.

사실적인 평가로 냉정하기 그지없는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이니 한창 주부로서 전성기를 구가할 때의 실력이 아닐까 싶었다.

밥상에 앉아 어머니의 음식을 먹으면서 찬사를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가 어머니와 의도치 않은 말다툼이 벌어져서 5일 정도 냉전을 벌였다.

처음부터 싸울 일이 아니었음에도 아버지, 어머니, 나까지 세사람이 모두 과민하게 반응했고 그 결과 진한 냉전이 되었다.

쉽게 넘어갈 전장이지만, 냉전의 주축이 된 어머니와 나는 늘 서로 하던 사과의 제스쳐를 하지 않았다.

나는 철저하게 외부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고 식탁은 부모님 두분만이 지켰다.

5일이 되었을 때 방문 너머로 어머니의 화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음식을 잘 안먹는다면서 안먹으면 조리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아버지 건강이 안좋았기에 냉전기간이었지만 방문을 열고 나가 왜 드시지 않냐고 물었다.

집요한 질문에 다른 답변을 하셨지만, 그날 이유를 알았다.

5일간 새로 만들었다는 반찬, 간식 등을 조금씩 먹어보니 정말 맛이 없었다.

어머니가 만든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싱겁고 텁텁하고 뭉개진 맛. 어느 하나 좋은 맛이 없었다.

똑같은 재료, 똑같은 방식, 아버지를 먹인다는 기본 마음은 같았겠지만, 전혀 달랐다.

그동안 실패했던 모든 음식이 5일에 모여있는 것 같았다.

나와의 냉전이 불러온 결과지 싶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음식에 조리하는 이의 에너지가 그대로 스며드는 것은 아닐까?

미식가이자 요리 평론가인 어떤 사람은 음식을 먹으면 요리사가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를 느낀다고 했다.

정말 특별한 감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정상이고 모르는 우리가 비정상인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둔하기에 알아채지 못할 뿐 모든 것들이 에너지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사람, 공기, 사물, 대하는 모든 것들이 내가 발산하는 에너지의 영향을 받는다. 

 

그 다음날 화해했다. 화해해도 좋을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만들어놓은 인기없었던 음식이 소진되면 다시 어머니가 만든 최상의 요리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5일간의 냉전과 맛없는 음식, 편안하지 않은 분위기는 서로 아끼며 지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일인가를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싸우고 있다면 서두를 것은 없다.

하지만 싸움이 주는 맛을 충분히 맛보았다면 진짜 좋은 맛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나도 좋은 맛을 내고 상대방도 좋은 맛을 내도록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망설임없이 움직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