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우의 신포도를 넘어선 진실

향광장엄주주모니 2020. 6. 21. 15:50

나무의 높은 곳에 달린 포도를 따지 못한 여우는 이렇게 말했다고 알고 있다.

"저 포도는 신포도일 거야."

이 우화가 무엇을 전하고자 했는지 사실 기억나지 않지만 여우는 지혜로운 것일까.

 

그런 말을 되뇌면서까지 스스로의 마음을 편안케 한 여우는 똘똘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자인 내가 보기에는 스스로 속이는 일에 불과하여 그런 편안은 조장된 것으로 쉽사리 깨어진다.

만약 키가 큰 누군가 포도를 따먹으면서 "이 포도는 엄청 달콤하고 향이 좋네"라고 말한다면 여우의 마음은 어떨까.

 

포도의 맛은 여우의 발언과 상관없다.

여우가 딸 수 없는 것이 사실일 뿐이라 굳이 적자면 포도가 시든 달든 내가 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 편안해진다.

그것은 쉽사리 깨어지지 않으니 진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하길 괴로운 상황일 때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어"라고 마음먹으면 편안해진다고 한다.

'실제 없는 것도 사실'이라는 말을 덧붙이는데 어쩐지 여우의 신포도 발언처럼 조장된 편안함이 느껴진다.

왜 그런 것일까.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통찰이 있다면 상황이 즐겁든 괴롭든 그런 통찰을 바탕으로 늘 편안해야 한다.

그런데 괴로운 상황일 때 그것을 되뇌어 마음을 편안케 하는 것이니 아마도 여우의 마음과 닮아 있는 듯하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존재하는 것은 없기만 할까? 없는 것도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시비를 가리는 글이 되는 것도 같다만 글을 읽으면서 일어나는 생각을 정리하여 조금 적어보고 싶었다.

위 경우처럼 괴로움을 넘어서기 위해 때에 따라 진리에서 가져다가 쓸 수 있지만, 조심할 필요가 있다.

진리를 통찰하여 견고한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도 헷갈리고 다른 이들도 헷갈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만 그래서 늘 조심하려고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