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일이 많은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지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4남매인데 그 중 장남인 오빠네와 나머지 가족들이 인연을 끊고 살고 있다. 가족들을 위해 기도할 때 오빠 부부를 언급하는 것이 껄끄러웠는데 그 마음이 점차 편안해졌다. 며칠전 합창단을 관두겠다고 하는 친구에게 불자는 먼저 자신이 마주한 현실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좋게 만들고 나서야 다른 것이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하면서 내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오빠네 가족이었다. 때가 무르익으면 모두다 좋아지겠지라고 믿고 있지만 그 때가 언제일지 솔직히 알 길이 없었다. 한번 부모님과 오빠 부부가 화해할 기회가 작년에 있었는데 내가 산통을 깼다. 더 이상 네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가족의 둥지를 박차고 나간 오빠 부부가 나머지 가족에 대해 미안하다거나 잘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 부분에 대해 오빠에게 밝혔고 오빠는 다시 열어볼까 하던 마음의 문을 닫았다. 부모님이 나에게 섭섭해 하셨다. 그런데 나는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섭섭하지 않고 마음으로 편안하게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내 어리석음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그동안 바쁜 가운데에도 장남노릇을 아무내색없이 든든하게 해준 동생에게 감사한 마음이 컸다. 그 선한 마음이 충분히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래도 필요한 이야기라. 어머니가 서울 아산병원에서 5월달에 뇌하수체 종양 수술을 5일간 받아야 하는데 입원이 불가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안된다고 하니 고민이 많았다. 동생부부가 서울에 있지만 아직 신혼살림집 그대로라 환자를 맡기기 어려운 상황이고 언니나 내가 운전하여 오르내리기에는 운전실력이 믿을만하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숙소를 잡는 것도 이야기하지만 연로한 부모님을 4일 동안 어디에 묵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여차하면 새벽에 서울로 운전해서 가고 쉬엄 쉬엄 내려오는 것도 생각하고 있지만, 내 주차실력을 본 지인이 그 실력으로 서울 운전은 생각하지 말라 한다. 아직 오빠를 뺀 3남매가 머리를 모으지 않은 상태라 동생하고도 이야기해보고 결정하려 하고 있었다. 요즘 내 고민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엄마가 전화를 한통 받았다. 방에서 듣다보니 오빠의 아내, 올케언니인 것 같았다. 기쁨에 가득 차서 보고 싶다, 서울에 가겠노라고 하는 엄마에게 '왜 올라가냐고, 내려오라고 하라'고 했다. 뇌하수체 종양때문인지 조금이라도 피로하면 머리가 아파 힘들어하면서도 엄마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편안한지, 무엇을 하면 불편한지 잘 배우지 못했다. 짜증이 확 올라왔다. 병증에 대해 메세지를 보내줘야겠다 싶어 전화통화를 마친 엄마에게 전화기를 달라 하니(나는 번호를 삭제한 상태다) 철저한 방어태세를 보이신다. 작년에 내가 깬 산통이 기억나신 것인지 이미 얼굴은 살짝 화기가 돈 방어태세로 확고했다. 언니에게 전화해 간단하게 사정을 말하니 자신이 올케에게 병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말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서울터미널 근처로 이사왔다고?(대치동에 38평 아파트를 사서 왔단다. 돈 많이 벌었나보다. 잘된 일이다) 어, 그럼 아산병원하고 가까우니 거기서 수술 받으면 되겠구나. 어, 뭐지? 갑지가 이 시점에 전화를 해서 자신이 이사했다고 말하는 올케는 정말 뭐지? 그래, 내 착각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데 나는 기쁘게 착각하련다. 친구에게 자기 주변부터 잘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말하고 나서 부처님을 향해 내가 무엇을 말했을까. 어머니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에 고민이 많은 내가 부처님을 향해 무엇을 말했을까. 이 오묘한 타이밍은 나에게 불자의 기쁨을 느끼게 했다.
살다보면 이런 오묘한 타이밍을 접하게 되는 때가 있다. 별일 아니라고 우연이라고 넘길 수 있지만 누군가 내 마음을 엿본듯이 필요한 일들이 펼쳐지는 순간을 만나면 감사하다는 생각, 내가 더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제 꾼 꿈이 갑자기 생각난다. 어떤 방에 두 사람과 함께 있었는데(한 사람은 불교대학 동기면서 내가 가끔 아르바이트하는 장애인 시절에서 일하는 분이었다) 큰 냉장고가 있었다. 내 냉장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장애인 시절의 팀장님이 오더니 냉장고를 열어보고 너무 비어있다는 말을 한다. 그 때 불교대학 동기가 좀 채워주라는 말을 했다. 또 팀장의 얼굴을 보니 곧 채워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도를 하거나 수행하면서 무언가를 특별히 바라지는 않았다(아니, 사실은 너무 큰 것을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기도의 공덕으로 모두가 밝고 편안해지기를 바랬고 아픈 부모님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기를, 부처님 법으로 잘 살아가길 바랬다. 그리고 그런 기도의 끝에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채워져야 하는 냉장고가 비어져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실을 법계에서 알아차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 많이 많이 가득 가득 채워주시라. 함께 다 나눠쓰게 늘 가득 채워지길 법계에 가득한 불보살님, 선한 신에게 발원한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걱정과 고민거리가 해결될 것 같다.
누구나 다 만나는 일이겠지만 불자인 나는 이 오묘한 타이밍들을 부처님과 함께 한다. 부모님을 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렸다. 오빠 얼굴도 보고 내려오시라 했다. 모든 일들이 부처님과 함께 하여 최선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일의 끝에 가족 모두가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 가족의 달은 뜻깊은 달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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