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느슨해지니 또 공왕불입니다. 법화경 신경 쓰라는 이야기 같아서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이렇게 댓글에 답도 하고 글도 쓰고 합니다. 이분들은 네이버 같은 곳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서 공왕불 기도 엄청 소개하고 권유하는 것 같아요. 그런 부지런함이 마음에 갈피를 못 잡는 이에게 돌아가는 일을 제시하는 것 같아서 좀 그렇습니다.
달콤함으로 유혹해도 덥석 잡아먹어버리지 않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것의 전제는 확실한 부처님 말씀이 아닌 추정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기도자는 이렇게 글을 적었습니다. 이 기도를 부처님이 경전에 남기지 않은 이유는 너무 간단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 거라고. 엄연히 추측이죠.
어제 달린 댓글에서도 우리나라 책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밝힙니다. 그 글을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50년 동안 수행하시어 우주삼천대천 세계의 선과 악을 주관하시는 위대하고 위대하신 공왕부처님의 존재를 깨달으셨으며 법화경문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위의 글의 수학무학인기품에 공왕부처님의 존재를, 그리고 법화경을 설하시기 전에 "나마 삳다르마 푼타리카 수트라"를 한번 하시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나라의 어느 책에서도 나오지 않지요. 연구도 하지 않고 그러니 모를 수밖에...
서울을 가본 사람과 안 가본 사람이 서로 싸우면 안 가본 사람이 이긴다지요... 그것과 같은 이치...
"나마 삳다르마 푼타리카 수트라" 기도부터 100일 이상 수행 해 보고 비교를 하시던지 하시요...'
우리나라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스스로 밝힙니다. 이분들 다 알고 있어요. 그런 기도가 경전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나오지 않는다고 기도법이 잘못되었다고 보기 어렵죠. 저도 다 아는 게 아니니까. 중요한 것은 그 기도법에 흐르는 법이 부처님의 말씀과 같은가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같지 않습니다.
이분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적을 때 저는 제 생각이 아닌 법화경 말씀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첫째, 석가모니부처님은 이미 오래전에 성불하셨습니다. 중생의 교화를 위해 짧은 시간의 수행 후 깨달았다고 중생에게 이야기하셨다고 밝히고 계십니다. 여래수량품의 내용을 조금만 적어볼게요.
"그렇다면 선남자들이여 잘 들을지니라. 내가 세웠던 확고한 서원의 힘으로써 천 인 아수라를 비롯한 이 세간에서는 이렇게 인지하되 지금의 석가모니 세존께서는 석가족의 고향을 나와 가야성에 있는 도량의 정상에서 무상정등각에 이르렀다 하느니라. 그러나 선남자들이여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이미 무량한 백천만억 겁 전에 무상정등각에 이르렀느니라."
중생의 근기 따라 법을 설하는 모습은 여러 곳에 나오고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의 존재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법화경만 제대로 읽었어도 50년 수행 후 공왕부처님의 존재를 깨달았다는 이런 이야기를 당당하게 적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부처님이 깨닫고 나서 모든 중생에게 불성 있음을 아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유일 부처님을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둘째, 부처님이 깨달은 법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그 자리입니다. 선이라서 좋은 것도 악이라서 나쁜 것도 없는 그런 자리입니다. 다만 일어나고 사라지는 자리입니다. 일체법의 성품이 환영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에 선은 어디에 있고 악은 어디에 있을까요? 법화경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 근본 성품을 본격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초목품을 조금 적어보겠습니다. 선도 악도 아니라는 문구는 어디였는지 당장 기억나지 않네요. 찾게 되면 다시 올리죠.
"만약 실상지에 이르게 되면 시방의 삼계를 모두 공으로 관하니 즉 환영이요 꿈이요 아지랑이요 메아리와 같아서 일체법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묶인 것도 아니요 풀린 것도 아니며 어둡지도 않고 밝히지도 않음을 보게 되리니 이와 같은 광명으로써 심원한 법을 관하는 사람은 서로 다른 갖가지 마음과 근기들을 지닌 중생으로 가득한 삼계를 보지 않고도 보게 되느리라."
위 구절 어디에 선악이 개입할 여지가 있을까요? 우리가 닿아야 하는 근본 자리는 그런 자리입니다. 법화경에 와서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방편이 아닌 진실법을 설하는 자리이며 그 진실법의 핵심은 여래의 지혜이기 때문이죠.
'선과 악을 주관하는 위대한 부처님'을 어떤 의미로 이야기하는지 모르지만 불교는 그런 가르침이 아닙니다. 절대신을 두고 기도하는 그런 가르침이 아닙니다. 스스로 자신의 불성을 찾아가는 가르침이니 과정에 도움을 받더라도 결국은 스스로 해나가야 하는 가르침인 거죠.
누군가 나마삿다르마푼타라카수트라를 하든 말든 하등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기도법을 두고 이게 경전에 나왔네, 안 나왔네 하면서 시비를 가리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부처님이 명확하게 전해주신 수행의 모습은 경전에 나와 있으며 이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경이든 사경이든 말이죠. 그것 이외의 것을 논하고자 한다면 좀 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법화경을 토대로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좀 더 법화경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지,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는 그런 성의 정도는 보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법화경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참담한 행위를 피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를 절대적인 전제로 둔 것도 불안한 일인데, 법화경이 전하는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많이 불안한 일입니다. 제가 나마삿다르마푼타리카수트라 수행에 크게 마음을 열지 않는 이유는 그 수행이 정말 법화경과 통하는 것이라면 수행하시는 분들이 법화경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법화경 수행, 법화경 수행, 강조하는데 도대체 그 수행 어디에 부처님이 법화경에서 전하신 진실한 가르침이 담겨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마삿다르마푼타리카수트라, 자기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다면 그 수행자들의 주장은 멀리 하고 부처님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법화경도 읽어가면서 했으면 합니다. 만약 읽을 여력이 안된다면 그저 부처님께 바른 법으로 이끌어주십사 발원하고 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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