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자다가 일어나서 염불한 이유

향광장엄주주모니 2021. 1. 11. 13:46

불교에 귀의하면서 '나쁜 짓 하지 마라', '공부 열심히 해라'라고 이해되는 갖가지 싸인들을 많이도 만난다.

물론 착각, 우연의 일치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이고 마음대로 해석일 수 있지만 말이다.

 

새해가 되고 나서 염불, 독경, 다라니에 대한 나름의 현실적인 목표를 세웠는데 작심 3일이 되었다.

아예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너무 미흡한 상태였다.

퇴근하면 연로한 부모님을 핑계 삼아 이리저리 노닥거리고 피곤을 핑계 삼아 침대에 눕고 특히 침대에 누워 노트북으로 드라마 보기를 즐기는 편인 나는 총체적으로 게을렀다.

 

어제도 누워서 노트북을 켜니 그 전에는 없었던 시끄러운 회전음이 요란했다.

그 소리는 잠잠해지지 않았고 너무 거슬려서 도저히 넘어가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래도 굳센 나는 노트북을 켰다 끄기를 반복, 노트북을 툭툭 쳐가면서 드라마를 켜놓고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대단한 컴퓨터, 더 대단한 내 습기.

 

그러다가 꿈을 꿨다.

샤워를 하러 들어갔는데 너무 캄캄했다. 방으로 나왔는데 거실에서 누군가 움직였다. 문을 여니 어머니가 추운 모습으로 서 계셨다. 아버지가 비정상적인 발작을 했다고 이해가 된 상황이었는데(아버지는 폐기능이 30% 미만으로 살아있고 인지장애가 있다) '너희 아버지가 사람은 참 착한데...'라고 하셨다.

꿈속에서 침대에 누웠다. 이불 위에 짐이 크게 세 덩이 놓여 있어 눕기 불편한 상황이었는데 아무튼 누웠다. 이 지점은 꿈인지 생시인지 좀 헷갈리는데 눈 앞 한 지점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 속에서 아주 작은 빛이 반짝거렸다.

그 순간 눈을 떴다.

 

아, 더 이상 기도를 미룰 수가 없게 되었다.

내 기도는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님을 알았는데도 너무 나태하니 컴퓨터로 태클을 걸고 꿈으로 태클을 거는구나 싶었다.

더하여 폐기능이 거의 상실되었지만 요즘 편안해하던 아버지가 어제 저녁 심하게 숨차 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만약 내가 더 나태하다면 앞으로 더 혼란해지겠구나 싶어졌다.

그대로 일어나서 염불을 만 번 했다.

 

솔직히 이런 것은 바람직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진짜 성공하려면 음식이 있든 없는 필요한 음식만을 섭취해야 하듯이 불자는 외부의 상황으로 움직이는 것을 오래 하면 안 된다.

 

나를 움직여준 꿈이 고맙긴 하다만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불인지 보살인지 선신인지 기도를 함께 하고픈 인연자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나를 흔들어대기 전에 내가 스스로 움직여 만복을 일으키고 주변을 편안하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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