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지혜가 겸비된 선의(자비)이길!

향광장엄주주모니 2024. 12. 1. 09:52

처음 불교에 입문하고 지장경을 읽으면서 자비심이 충만해졌다. 개인적으로 지장경은 인과를 가르치는 경이고 자비를 일으키는 경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어느 순간이 되니 모든 대상에 대한 연민이 일었다. 

 

당시 매일매일 개천을 따라 산책을 하면서 이런저런 사유를 하는데 비만 내리고 나면 가는 길목에 지렁이가 눈에 엄청 보이는 거다. 햇빛이 내리쬐니 말라죽을 게 뻔했고 자전거 바퀴나 그저 걸어가는 사람들 발에 밝혀 죽을 것이 눈에 선했다.

 

철들고 벌레가 징그러워서 손으로 잡지 못하니 나뭇잎을 이용해서 지렁이를 어렵게 길 가로 놓아주고는 했는데 어느 순간이 되니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렁이에게 최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어디에 두어야 좋은 일인지 알기 어렵다. 오히려 나의 개입이 일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일지도...

 

그 순간 자비심만 있는 것이 얼마나 부족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지혜로 충만해야 하고 실행할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부처님의 원만한 갖춤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가. 그래서 어쭙잖은 자비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마음은 찬탄할 만 하나 원만하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생각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요즘 다시 그런 생각을 하는 계기가 있었다. 어머니가 기도를 열심히 하시기도 하고 마음이 열려서인지 내가 집안일하는 것을 도와주시려고 움직이실 때가 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행위가 상황을 더 안 좋게 만드니 '제발 가만히 계시라'라고 잔소리를 하게 된다.

 

그런데 말이다. 어머니의 행위는 그 뜻이 매우 선하다. 자신을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는 자식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은 그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선의가 일어난다고 해도 가끔은 하고 싶은 그 마음을 참는 것이 더 큰 미덕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선의가 일어나고 일을 좋게 만들 방법을 알고 실현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일이 더 복잡해진 상황에서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선한 마음은 감사히 받기로 한다. 그러면서 그 선한 마음에 지혜가 겸비되기를 기원해 본다. 마음에 일어나는 자비가 온전한 자비일 수 있도록 우리의 지혜가 열려가기를! 힘이 갖춰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