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기도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기도를 묻는 누군가에게 살짝은 질책(?)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소망성취를 위해 21일 기도를 하고 있는데 어떤 스님 법문을 보니 참회기도를 하면 기도가 성취된다고 하더라. 진언중에 참회진언도 있고 하니 혹시 참회기도는 특별한 기도방법이 있는가. 덧붙여 말하길 기도는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도와달라는 것인데 자신은 기도하면서 일종의 선행을 약속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그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참회기도를 묻고 있으며 소망을 이루기 위해 부처님께 기도하면서 이걸 이뤄주면 제가 이런 선행을 하겠다는 조건을 걸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600자에 걸쳐 답변을 달았는데 내 생각을 적자면 이렇다. 먼저 참회기도를 권하는 스님의 법문을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이 온갖 어려움으로 가득차고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행했던 모든 탐진치의 악업들이 장애물로 등장한다. 참회는 이 장애물이 사라지게 하는 일이 되니 진정한 참회에 들게 되면 바라는 일들이 성취될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 답변에도 적었는데 어떤 스님은 굳이 소망기도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까지 말했다.
그런데 참회는 입으로 몇번 잘못했음을 말한다고 완성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모습의 기도이든지 발원을 참회에 두고 그 기도의 공덕을 나의 악업으로 인해 고통받았고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회향해나가는 기도를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 진짜 참회가 일어나는 순간이 온다.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진짜 내가 어리석었고 잘못했다는 그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앞으로 잘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이 생기기도 하고 나로 인해 고통을 받은 이들의 용서를 구하고 평온을 발원하게 되는 마음이 일기도 한다. 한번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기억도 못할 얼마나 많은 악업을 저질러왔겠는가. 그러니 참회기도를 하고 싶다면 내 소망을 위한 참회기도가 아닌 참회를 위한 참회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가 무엇이라고 규정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하지만 무엇인가 이루기 위해 도와달라 하는 기도는 기도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기도의 전부인냥 생각한다면 잘못 아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부처님 법을 배워나가면서 기도의 내용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스스로 한번 살펴보라. 넓어지고 깊어지고 청정함이 깃들어간다. 누군가에게 청하는 기도에서 시작하여 조금씩은 내가 베풀겠노라는 기도로 변화하기도 한다. 부처님을 부르지만 우리 안에 불성을 깨달아 조금씩 부처의 성품을 스스로 내어보이는 순간이 온다 보면 적절할까.
조건부의 기도는 절대적으로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을 해주면 내가 이렇게 할게요. 누구랑 거래하려는 것인가. 당신의 그 선행은 정말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차라리 그냥 달라고 떼를 쓰라. 그리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그 선행을 아무 조건없이 행해나가라. 그게 더 수승하며 만복이 깃든다. 당신의 조건없는 선행이 쌓이면 법계를 가득 채운 불보살, 선한 신들은 당신의 삶이 세상을 밝게 나가는 귀한 삶이라 여기기에 당신의 소망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어떤 불자가 되고 싶은가. 조건을 걸어 거래함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떼를 쓰는 불자인가, 아니면 그 삶이 세상에 유익하여 법계에서 조건없이 베풀고 싶은 불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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