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체험(경험)을 얼마나 믿어야 할까.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9. 15. 22:04

수행하는 이들은 경험을 통해 많을 것을 배워나갑니다.

저 역시 경험을 통해 경전의 가르침이 실체화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경험은 늘 진실일까요? 글쎄요. 내 생각에는 때때로 경험에 속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거니까 이게 진실이야. 이렇게 해야만 해"라고 누군가 말했다 칩시다.

맞는 말일 수 있지만 이 주장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첫째는 그 경험에 속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통찰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어리석은 알음알이, 쉽게 말해 착각일 수 있다는 거예요.

둘째는 모든 사람이 다르다는 배경을 무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자신에게 최고라고 다른 이에게 최고일까요?

아이의 음식은 어른에게 너무 싱겁죠. 어른의 음식이 아무리 좋다한들 아이가 소화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을 근기가 다르다고 합니다. 아이, 어른같은 차이일 수도, 남자, 여자와 같은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경험한 바를 적절하게 걸러내지 않고 무작정 신봉하다보면 이상한 길에 들기도 합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경험과의 밀당(?)이 필요합니다.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대해 '너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맞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그것을 세상의 이치라 하든, 진리라 하든, 우리 삶을 지지하는 바탕으로서 그것에 의해 판단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불자라면 당연히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하겠지요.


불법이 하나인데 다양하게 법이 펼쳐지는 것은 근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법화경에 수도 없이 나오는 내용이며 다른 경전에도 나오는 내용인 것으로 압니다.

우리가 만나는 법은 거대한 숲의 작은 나뭇잎 하나와 같다고 했습니다.

각자 만난 나뭇잎은 숲의 일부이며 숲의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법을 배우는 이는 나뭇잎 하나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숲과 통하는 일에 들게 됩니다.


자신의 체험이 늘 진실은 아닙니다. (이런 말이 이해안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근기가 달라서입니다.)

"내 경험은 이래. 그러니 이게 진실이야."라고 말할 때, 누군가는 당신을 향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는 그렇지만 내 경험은 그와 달라."


두 사람 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바를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진실이라고 할까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테니 진실 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경험이 이러하니 이것만이 옳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자라면 우리가 체험(경험)하는 것이 법의 일부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그 경험이, 우리가 속아넘어가는 착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근기가 달라 법을 대함이 상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를 알았는데, 모든 것을 알았다고 말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혜롭지 않은 것일 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함으로써 법을 향해 나아가는 누군가의 심성을 흐린다면 좋은 일이 되기 어렵습니다.


적고 보니 다소 산란하네요.

그런데 이 글 안에 하고 싶은 중요한 말들이 있어서 제대로 잘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정리하여 쓸 날이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