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코땡땡이 읽었으면 하는 글. 욕심으로 시작할지라도

향광장엄주주모니 2019. 5. 28. 15:40

오늘은 글을 쓰는 날이 되었다.

카페에 어느날 갑자기 공왕불 기도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 사람이 있다. 애초에 그 무리였는데 숨기고 있었던 것인지, 정말 우연히 알게 되고 나서 그렇게 변화한 것인지 모르지만 오늘은 그 부분과 관련하여 조금 적어보려 한다. 많이 안타깝다.


우리가 부처님 법과 관련된 기도를 시작하는 계기는 어떤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방법일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게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개인적 아쉬움, 원, 욕심으로 시작할지라도 점차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서 배우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그리하여 삶이 점차 변화하게 된다. 그래서 불교에 입문했다면 그런 변화로 이끌어주는 환경을 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경전, 좋은 법문 등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것, 그것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이끌어주는 사람과 상황, 이런 환경이 실로 불자에게는 큰 의미를 갖는다. 


어찌되었든 개중에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것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게는 불교와 관련된 모든 수행이 현생을 살아가면서 아쉽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활용하고 의지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기도의 효과를 강하게 언급하면 그 마음을 금새 사로잡을 수 있다. 생각해보라.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런 것에 결정적으로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특히나 법화경을 공부하는 이라면 그런 것은 따라오는 것이지 크게 구하여 얻을 바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곰곰히 생각해보라. 지금 머물러 있는 자리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얼마나 가까운가. 옳고 그름을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불교에 입문하여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 삶은 그 욕심이 이어준 인연으로 채워지기 시작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실로 두려운 일이다.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마음내고 구하는 것에 따라 이어진다. 왜 어떤 사람은 죽으면 개의 태속으로 기뻐하며 들어갈까. 마음에 자리잡은 욕망과 집착이 그의 눈을 가리기에 개의 태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이해하고 있다(이것은 어떤 스님, 불자의 경험담을 읽은 내 개인의 생각이다).


현생을 잘 살아가는 것(건강, 경제, 관계, 일 등)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 잘 살아감으로 따라오는 것이지, 그것을 목적으로 살아가면 그 욕망이 눈을 가리고 그에 합당한 인연으로 나아가게 된다. 나는 공왕불 기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기도로 이끌고 머물게 하는 유입인자가 부처님이 법화경에서 중히 말씀하신 부분과 어긋나 있다고 느껴져 마음에 걸린다. 또 명확하게 드러난 부처님의 가르침과 다르게 말한다고 느껴져 마음에 걸린다. 아마도 기도의 효과만 좋다면 괜찮다는 마음을 떠난 사람이라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며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그 무리와 멀어졌을 것이다. 또 내가 생각하건대 법화경을 글자 그대로 읽고 받아들였다면(이것은 '자기 멋대로'와 반대의 의미로 적은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법화경을 알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욕심으로 시작했더라도 너무 오래 머물지 말았으면 한다. 떠나지 못한 욕심이 그대를 그런 인연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좋지 못한 인연과보가 얼마나 삶을 힘들게 하는지 지금 우리는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간다. 그런데 거기에 또 무엇을 얹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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