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다 보니 목사님 설교를 듣게 되었다. 찬송가도 따라 부르고 기도의 끝에 '아멘'도 했다. 이름이 다르지 모든 종교가 진리를 말한다면 하나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아멘'할 수 있지만, 성경의 구절을 해설하는 목사님의 설교에는 '아멘'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적으려 한다. 오늘은 대략의 내 의견을 적고자 한다.
색다른 것은 아니다. 내가 불교를 높이 보는 것은 그 가르침이 좋고 그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가는 이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들이 공부자들 중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그 가르침이 좋겠지만(내가 진득허니 공부한 바가 없으므로 이 수준에서 좋다고 단언하면 웃긴 일이 된다. 물론 내가 조금 아는 바로 적자면 불교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가는 이들이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다시 말해 가르침의 의미를 제대로 꿰뚫은 이가 있을까 싶다. 진리는 하나일테니 결국은 통해야 진리라 할텐데,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기독교인들은 세상 여타의 진리에 대해 단절된듯이 보인다. 그런데 불자인 나는 내가 들은 성경 구절에 대해 이해가 되고 수용이 된다. 다를 바 없는 지점이 보인다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나의 생각에 대해 '어거지로 가져다 붙인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어거지일 뿐인지, 한가지만 적어보면 이렇다.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생각해보라. 만약 하나님이 진짜 최고의 신이라면 우리 불교적 관점에서 그것은 무엇일까. 불성 아니겠는가. 이 불성 외에 섬길 무엇이 있는가. 그것이 전부다. 또 사람이 만든 우상에 절하지 말라는 것을 생각해보라. 마음이 지어냈다면 지어낸 형상은 허상일 뿐이다. 그 허상의 무엇을 믿고 절을 하려는가. 만들어낸 허상을 알아차리라고 가르치는 것이 불교 아닌가. 불자인 내가 보기에 성경의 구절은 진리다. 목사님의 설교는 불교의 가르침과 다를 바가 없는 구절을 잘못 이해한 사람의 말로 들렸다. 설교의 대부분이 그렇게 이해되었다.
진리가 아니라면 귀의할 필요가 없다. 또 진리라면 하나일 것이다. 다를 바 없는 종교의 진리 중 나는 불교와 인연이 깊으며 불교를 통해 진리의 본모습에 다가간다 믿는다. 나를 가르치는 불성이 있고, 나를 가르치는 선지식이 있어 나 역시 불성에 닿을 수 있음을 믿는다. 이런 이유로 불교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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