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면서 염불하면 바로 왕생한다'는 글을 읽었다. 제목을 보고 '무슨 저런 말을'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평소라면 읽지 않았을 글을 열어보았다. 결론적으로는 결국 믿음이 있어야 왕생한다는 글과 다르지 않은 글인 것을 알게 되었다. 염불로 이끌기 위한 글이겠지만 조금은 난해한 표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염불과 왕생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염불자가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아미타부처님의 18대원은 무어라 말하는가. '만약 내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중생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며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내지 십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할 수 없다면 성불하지 않겠다. 다만 오역죄를 지었거나 정법을 비방한 자는 제외한다.'고 한다. 표현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다. 구절을 보건대, 의심하면서 염불하는 자의 왕생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만약 '정말 그럴까?'라는 의심이 있는 자가 염불하여 왕생을 했다면 결국 그의 마음에 자리한 것은 의심인가, 믿음인가. 믿음으로 이어지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염불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의심을 깨고 넘어서는 믿음이 없다면 그의 염불로 왕생이 보장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경전에 의심하는 이의 왕생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 믿음을 중요하게 이야기한다는 점을 염불자는 알아야 한다.
의심많은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염불로 이끄는 노력은 매우 찬탄할 일이지만, 그렇더라도 표현은 조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염불왕생은 믿음을 이야기하니 말이다. 물론 의심으로 시작하더라도 염불하며 부처님을 가까이 하다보면 불성의 움직임에 의해 점차 마음이 열리는 순간이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의심하면서 염불하면 왕생한다'는 것과 아주 다른 말이다. 의심은 왕생으로 이르는 길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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