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카페에 댓글을 보니 해타리님이 적은 글이 있네요.
필명은 자신의 바램이나 생각이 담겨있으니 아마도 '해탈'에 대한 마음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런 마음이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크게 좋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이미 떠나 더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데 이 사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매여 있구나' 싶어서.
그런 사람과 마주하는 것이 즐겁지 않네요. 물들까의 두려움이라기보다는 부처와 먼 것이 싫은 것도 같습니다.
어리석거나 자비떠난 글(개인의 생각입니다)을 읽으면 기분이 썩 좋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수행하는 불자가 가장 많이, 가장 먼저, 가장 깊이 챙겨야 할 것이 자신의 마음입니다.
부처에 닿으라는 글을 적을 때에는 그 기쁨을 알기에 적는 것입니다.
그것을 나누기 위해 적는 것입니다.
그리 이해할 수 없는 해타리님의 처지가 있겠지만, 좋은 일을 하기 바랍니다.
수행의 참 의미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 있습니다.
무엇으로 시작하든 결국 자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른 이에 대해서 잣대를 들이댈 수 있지만, 그 잣대가 향해할 곳은 결국 다른 이가 아닌 우리 자신입니다.
적은 글로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는 일을 하다 보면 많이 밝아질 것입니다.
염불을 하지요?
염불하여 마음이 불성에 이르면 님이 적었던 댓글의 마음을 넘어서게 됩니다.
아직 경험이 없다면 마음비우고 그저 부처님을 생각하며 불러보세요.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좁은 마음을 넘어서게 됩니다.
답글에 간단히 답만 했는데 사실은 이 말이 하고 싶어서 블로그에 적어봅니다.
받아들일 마음이 아닐 것 같아서 인연된 누군가라도 보면 좋을 것 같아 이 아침 이리 적네요.
생각해보면 해타리전에 니르바나였을 때 네이버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 시점이 올해 1월 1일로 넘어가는 시점으로 제 글에 첫 댓글을 달았었지요.
이제 추석명절로 드는 00시에 댓글 적어오니 참 그대로구나 싶어 씁쓸한 웃음이 납니다.
나는 이 인연을 마음으로 받지 않겠습니다.
세상을 향해 내야 할 자비심 외에는 별도의 관계를 갖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더 법력이 커져 능히 변화를 이룰 수 있을 때, 그 때 마주하겠습니다.
이 뜻을 나의 법계에 선포합니다.
언젠가는 당신을 자연스레 마음에 담을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버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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