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욕에 대해서는 글을 꽤 썼던 것 같다. 이 글은 예전에 작성하다가 임시저장한 글인데 오늘 쓰면 딱 좋을 듯 하다.
배경은 이러하다. 오늘 법화경 카페에 글을 올렸는데 글마다 팬인 듯, 스토커인 듯 댓글을 올리는 이가 있어 오늘 오전을 할애했다. 필요한 부분을 밝히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하는 말에 답을 달았다. 물론 실익은 크게 없는 것도 같다. 작년에도 경험해서 새롭지 않지만 상황에 따라 이리 저리 주제를 바꾸며 단지 괴롭히겠다는 그 의도가 동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늘 법화경을 읽는데 공덕품에 인욕에 대한 구절이 나와서 잠시 마음이 머물렀다. 함께 나누고 싶다.
또 인욕을 행하되
변함없이 바른 마음으로
많은 폄훼를 견뎌내고
설혹 증상만을 품은 믿지 않은 이들이
모멸하는 말을 하더라도
불지혜를 위해 견디며
변함없이 바른 마음에 머물러서 견뎌내는 것이 인욕이다.
바른 마음에 머물러야 한다. 무엇이 바른 마음일까. 탐진치를 떠난 마음, 자비로 가득한 마음, 지혜로 밝아진 마음이다. 사실 견뎌낸다는 지점이 좀 흡족하지 않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오늘만큼은 견뎌내는 것이 경의 말대로 미덕으로 느껴진다. 흐린 마음을 계속 마주했더니 나도 따라 탁해지는 것 같다. 아직은 견고하지 않아 평온한 가운데서도 바른 판단이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무엇을 위한 의사표현인지를 몇 번 말을 주고 받으니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말을 주고 받음이 덧없으리라는 것을 알 것도 같았지만, 여러가지 이유 있어 잠시 대화를 했다.
증상만의 믿지 않는 이들이 모멸의 말을 해도 불지혜를 위해 견디는 것이 인욕이다.
깨달지 못했는데 깨달은 척 하는 사람, 이런 이가 증상만이다. 증상만인가 아닌가를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라 이건 넘어가겠다. 그런데 불법을 배우는 이를 업신여기고 얕잡아보더라도 불지혜를 위해 참는 것이 인욕이라고 한 이 부분은 꽤 여러차례 경험을 했다. 작년에 집중적으로 비난, 조롱, 경시를 당했는데 그 때 상불경보살을 생각하며 이 말을 많이 떠올렸다. '그대들도 보살도를 행하여 부처님이 될 것입니다.' 작년에는 댓글이 달릴 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가끔은 화가 나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인욕을 닦아갈 수 있었다. 그것이 부족한 것이었을까, 닦을 바가 더 남았는지 올해 또 그렇게 하고 있다.
다행히 작년의 공부덕분인지 올해의 마음은 다르다. 화가 나지 않는다. 그저 답답할 뿐이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씩 답답함이 마음에 솟아난다. 이것도 과하면 독이지 싶다. 가급적 오해를 풀어 상대의 마음도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데 글에 대해 자꾸 없는 말을 했다 하니 대화가 불가하다는 생각이다.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숙여서 비위를 맞춰주는 것도 가능하지만, 서로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며 스스로 속이는 일에 머무르기 쉽다.
연초부터 이런 일에 휩쓸려 시간을 많이 뺏겼는데 생각해보면 나름 보살도 육바라밀의 하나인 인욕을 다지고 있는 중이다. 생활이 수행이기 위해서는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모든 순간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무엇이 최선이며 무엇이 진실인가를 끊임없이 확인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하리라. 나는 문제없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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