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지헤로운 자비

향광장엄주주모니 2018. 10. 21. 15:46

벌써 몇주가 지난 일이다.

아침에 공원을 산책하는데, 갑자가 어떤 할아버지가 불러세웠다. 잠시 자신에게 오라고 했는데 걸음을 멈춘 그 자리에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2천원을 달라고 한다. 자신이 슬리퍼를 신고 집에서 나와서 다시 들어갔다가 오기가 힘든데 술을 사게 모자란 돈을 달라는 것이다. 일단 휴대폰만 달랑 가지고 나온지라 현금이 없다고 말을 하고 걸음을 다시 재촉했다.

공원을 걸어나오며 잠시였지만 많은 고민을 했다. 술이야 100여 미터 떨어진 편의점에서 사다 드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카드가 있으니. 그런데 술이지 않은가? 배가 고픈 것이라면 편의점에 모셔가 도시락을 사드릴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런데 술이지 않은가? 그래, 술이라도 사줄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이번에 사준다면 다음에도 그 사람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그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니다. 무엇이 자비이고 무엇이 지혜인가를 고민하며 공원을 벗어났다.

'만약 할아버지가 부처님의 변신이라고 하면' 이 가정을 내내 생각했다. 무엇이 가장 제대로 한 것일까?  고민의 끝에 그 자리를 그대로 벗어났지만, 부처님이 '너 잘했다' 하실지 궁금했다. 솔직히 지금도 명확하지는 않다. 그건 내가 넘어가야 하는 숙제다. 지혜로운 자비. 

누군가 필요를 채우지 못해 부탁을 하면 대부분 들어줬던 것 같다. 물론 못들어주는 것이 있고 내 욕심으로 안들어주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게 대응을 해주는 것이 편했다. 그런 나였기에 예전이었다면 할아버지의 청을 뿌리치고 돌아온 것이 못내 찝찝했을 것이다.

자비가 참으로 자비이려면 지혜로워야 한다. 

술을 먹겠다고 돈을 달라던 할아버지의 청을 뿌리친 나는 지혜로운 자비에 가까웠을까?

참으로 지혜로운 자비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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